습작 소설

천국의 문(장편) 16

김지환 변호사 2024. 12. 9.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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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문 16

 

김지환

 

   하람은 2시간의 수술 끝에 고비를 넘겼다. 대퇴동맥이 일부 파열되었지만 경찰특공대의 응급처치와 구급대의 빠른 대처가 대량 출혈을 막았다고 했다. 총 세 발의 뇌 관통상으로 최형일 팀장이 사망하고 하람이 병원에 있는 와중이었으나 경찰로서는 더 이상 수사를 지체할 수 없었다. 천국의 문 지하 2층 시신 강현중이 범행한 강간치사 사건 피해자의 친오빠 차동혁, 납치범들과 연락하며 천국의 문 사건을 벌인 것으로 보이는 세세교 부총재 강상국이 검거된 뒤 두 사람 모두 구속되었지만 경찰이 이들을 구속할 수 있는 시간은 단 10일이었다. 게다가 강상국의 검거에 이틀이 소요되는 바람에 차동혁은 8일 이내에 조사를 마쳐 검찰에 송치해야 했다. 이태식 경사, 이정희 경장과 박형욱 순경이 최형일 팀장의 빈소를 지켰고, 병원에 있는 하람을 대신한 김정규 경사와 유정이 차동혁의 조사에 투입되었다.

   차동혁에 대한 진술거부권 등의 고지를 마치고 정규와 유정이 피의자신문을 시작했다.

   “직업이 뭡니까?”

   “공무원입니다.”

   “그건 우리도 알고 있고 구체적으로 말씀하세요!”

   이 사건으로 최 팀장이 사망하고 하람이 중상을 입었던 터라 정규의 감정이 좋지 않았다. 허허실실해 보였던 평소와 달리 정규가 예민하게 질문을 던졌다.

   “정암지방법원 5급 사무관입니다.”

   “법원 어느 직렬에서 일합니까?”

   “형사9단독 재판부 계장입니다.”

   “법원 직원이라는 사람이

   정규가 말을 하다 말았다. 동혁이 고개를 숙였다. 정규가 다시 질문했다.

   “강간치사 사건 피해자 차지현 씨의 친오빠죠?”

   “.”

   “가해자 김현중에 대해서도 이미 알고 있죠?”

   “.”

   “김현중 살해했습니까?”

   “

   “질문 안 들립니까? 이봐요? 당신들 때문에 경찰이 죽었다고!”

   정규가 다시 거칠게 물었다. 동혁이 입을 열었다.

   “제가 법원 공무원이 되었던 건 그 새끼한테 복수하고 싶어서였습니다.”

   “법원 공무원이 무슨 수로 복수를 합니까?”

   “강현중 그 새끼가 어디에 있는지, 언제 출소하는지 알아야 했습니다. 법원에서 일하면 그런 정보를 얻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강현중이 8년을 교도소에 있었으니 법원 행정고시 준비 기간은 충분했습니다. 법원에 있으니까 어렵지 않게 알아낼 수 있었어요. 어느 교도소에서 복역 중인지, 정확한 출소일이 언제인지. 그런데 정보를 얻었어도 막상 그 새끼를 죽이려고 하니 어려웠습니다. 살인을 해본 적도 없고 방법도 잘 모르겠고. 그래서 저 대신 강현중을 죽일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법원에 오는 사람들 위주로 보았습니다. 법원에 형사 재판받으러 오는 사람들이 범죄와 친한 사람들일 테니까. 그런 면에서 법원은 제 의도와 맞았습니다.”

   “그러다 만난 사람이 강상국입니까?”

   “.”

   “강상국을 어떻게 만나게 되었습니까?”

 

*

 

   퇴근하고 법원 정문을 막 나서는 차동혁에게 남자 한 명이 옆으로 다가와 말했다.

   “차동혁 씨?”

   “. 누구시죠?”

   동혁은 모르는 사람이 접근하자 옆으로 한발자국 물러났다. 동혁의 바로 옆은 아니었지만 강상국이 데리고 온 자들인지 건장하게 보이는 남자 두 명이 약간 떨어져서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강상국이라고 합니다.”

   몸에 딱 맞는 양복 차림의 사내가 동혁에게 명함을 건넸다. 명함 전체가 갈색 바탕이었고 왼쪽 상단에 하얀색 정사각형 그림이 박혀 있었다. 오른쪽 하단에는 세세교 부총재 강상국과 그 바로 밑에 010으로 시작하는 휴대폰 번호가 인쇄되어 있었다. 동혁은 세세교를 이미 알고 있었다. 그의 여동생을 강간하고 죽인 강현중, 그의 여동생 차지현 모두 세세교 신자였었기에. 동혁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세세교에서 무슨 일로 찾아온 겁니까? 왜요? 저한테 포교라도 하시려구요?”

   “강현중 씨 일은 거듭 사과드립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가 90도 가까이 허리를 숙였다가 세웠다.

   “저희가 피해 배상에 대해서 말씀드리면서 몇 가지 부탁도 드리려고 하는데 잠시 시간 좀 내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제까지 가만히 있다가 뭐요? 배상?”

   “잠시만 좀

   “됐습니다. 사양하죠.”

   동혁이 자리를 벗어나려 하자 상국이 말했다.

   “처리하고 싶지 않으세요? 강현중? 당신 동생을 강간하고 죽인 그놈.”

   상국의 말이 동혁의 다리를 붙잡았다. 동혁이 상국을 쳐다보았다.

   “아무리 그래도 여기가 법원 바로 앞이니 잠시 어디 가서 말씀 좀 나누시죠.”

   자리를 옮긴 곳은 법원 바로 앞 변호사 사무실이었다. 오후 6시가 넘었기에 변호사 사무실의 직원은 없었고 변호사 혼자 일을 하고 있었다. 서류 더미들이 여기저기 쌓여 있어 무척 바빠 보였다. 상국과 남자 2명이 들어가자 변호사는 상국과 반갑게 악수했다. 인사말을 나누고 변호사가 외투를 입어 밖으로 나와 사무실에는 상국과 남자 2, 동혁까지 4명만 남게 되었다. 상국은 남자 2명도 밖으로 나가라 했고 이제 상국과 동혁만 남았다.

   “앉으세요.”

   상국이 익숙한 듯 자리를 안내했다. 상국도 자리에 앉으며 다리를 꼰 채 말했다.

   “돈을 원하시지는 않을 것 같아요. 그죠?”

   상국의 질문에 동혁이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제가 해드릴게요. 원하시는 거. 피는 제 손에 묻히죠. 강현중 제가 처리할게요. 복수 대신 해드리겠습니다. 강현중은 세세교 일원이니 제가 처리하는 거 어렵지 않습니다. 운이 좋으세요. 우리 두 사람이 원하는 게 다행히도 같아서.”

   상국이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담배 연기가 모락모락 위로 오르고 있었다. 동혁이 천장으로 눈을 돌렸다.

   “걱정마세요. 이 정도 연기 난다고 작동하지 않습니다.”

   정말이었다. 그가 입으로 거푸 연기를 내어 주변이 뿌옇게 되었지만 별다른 일은 없었다.

   “거봐요. 아무 일도 없잖아요.”

   “그런데 원하는 게 같다니 무슨 말씀인가요?”

   “아닙니다. 신경 안 쓰셔도 돼요.”

   “저한테 원하시는 건 뭔가요?”

   상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법원에서만 볼 수 있는 자료, 예를 들면 동혁 씨가 있는 재판부에서 하는 사건들에 대해서 검찰이 제출한 자료나 증거, 사건 관련자들의 개인정보, 수감 정보 등을 제가 요청할 때에 주시면 됩니다. 간단하죠?”

   잠시 가만히 있던 동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동혁이 고개를 끄덕이자 상국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갑시다. 사무실 주인이 밖에서 기다려서.”

   동혁은 궁금했다. 저들이 어떻게 알았을까. 그토록 원하던 것을 얻기 직전인데 무서웠고 소름 돋았다. 하지만 마음을 다잡았다. 그것을 위해 이 자리에 오지 않았던가. 언젠가는 처벌받을 수도 있겠지만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강간당한 후 사망한 동생과 그 충격에 앓다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어떤 일도 견딜 수 있다고 다짐했다. 동혁이 나가려는 강상국을 붙잡았다.

   “잠시만요. 더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상국이 동혁을 보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원하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을 수 있습니다.”

   “누군데요?”

   “아직은. 제가 말해보고 가능하면 그분까지 같이했으면 합니다.”

   “그분이라고 하는 걸 보니 차동혁 씨보다 높은 분 같군요. 알겠습니다. 빨리 연락주세요.”

 

   최희영 부장판사가 딸의 사망 후 3개월간의 휴직을 마치고 재판부에 복귀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서는 전과 같은 자신감과 웃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생기가 사라졌다. 일 처리도 깔끔했고 항상 웃는 모습에 누구에게나 친절했기에 법원 내 선후배, 동료, 부하 직원 누구나 그녀에 대해 험담하는 이 없었다. 같은 형사9단독 재판부 소속으로 그녀의 부하 직원인 차동혁으로서는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것이 너무나 안쓰러웠다.

   동혁은 희영에게 상국으로부터 받은 제안에 함께하자고 말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날도 재판을 마치고 동혁이 희영을 주시하고 있었는데 보통의 경우였다면 희영이 사무실로 들어와 법복을 벗은 후 책상에 앉아 일을 하겠지만 그녀는 법복을 입은 채로 법원의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에 오르니 벗겨지고 부식된 바닥이 울긋불긋했다. 희영은 태양의 열기에 메말라 바닥이 쩍쩍 갈라진 황무지를 떠올렸다. 아무도 없는 옥상, 황무지에 혼자 서 있는 그녀가 저벅저벅 앞으로 나갔다. 겨우 눈을 깜박이고 숨을 내쉬었다. 한 걸음씩 내딛을 때마다 그녀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던 감정들이 출렁였다. 사회의 최선이라고 믿었던 법이, 그래서 그 최선을 위해 몸과 마음을 모두 바쳤던 법이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는 배신감, 눈을 감고 떠봐도 딸이 없는 세상 그대로라는 굴레에 갇힌 느낌, 더 이상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감과 허무. 그녀의 뒤에 보이지 않는 여러 갈래 줄에 매달려 달그락거리는 깡통들이 그녀가 걸음을 뗄 때마다 그녀의 속을 시끄럽게 만들었다. 처음에는 딸을 잃었다는 상실감이 컸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법에 대한 신뢰의 보답이 고작 이것뿐이라는 배반감에 견딜 수 없었다. 희영은 이제 그 끈을 모조리 잘라버리는 것만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라 여겼다.

   옥상의 끝에서 그녀가 아래를 내려 보았다. 걸치고 있는 법복이 바람에 몇 차례 펄럭였다.

   “부장님!”

   그녀의 뒤에서 동혁이 소리쳤다.

   “부장님. 안 됩니다! 내려오세요!”

   그녀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부장님. 내려오세요. 제발요. 그렇게 가시면 아무 의미가 없잖아요. 그놈들 멀쩡히 계속 살아있잖아요. 그동안 말씀드린 적 없는데 제 친동생도 범죄 피해자였습니다. 강간치사 피해자. 사망한 지 꽤 되었는데 아직도 생각나요. 그래서 전부는 아니더라도 부장님 어떤 마음이실지 이해합니다.”

   희영이 옥상의 끝에 올라선 채로 천천히 동혁의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동혁이 꿀꺽 침을 삼키며 말을 이었다.

   “저는 가해자 그놈을 찾아서 꼭 복수할 겁니다.”

   희영이 옥상의 끝에서 아래로 내려왔다. 희영과 동혁의 시선이 마주친 채로 서로 아무 말이 없었다. 무표정이었던 희영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녀가 상념에 젖은 듯 고개를 숙였다. 동혁이 희영에게 조문 갔을 때에도 희영은 울며 동혁에게 똑같은 말을 했던 터였다. 강상국이 동혁에게 복수를 대신 해주겠다고 제안했을 때, 동혁은 복수하고 싶다는 희영의 말을 떠올렸었다. 내친김에 동혁이 더 말했다.

   “같이 하시죠. 어떠세요?”

   희영이 고개를 들었다. 다시 희영과 동혁의 시선이 마주쳤다. 역시 서로 한동안 말이 없다가 희영이 입을 떼었다.

   “방법이 있나요?”

   그녀가 간절한 표정으로 나직이 물었다. 동혁이 말했다.

   “제 동생을 강간치사한 놈이 세세교 신자였어요. 제 동생도 거기 신자였구요. 부장님도 들어보신 적 있으시죠. 세세교라고. 교주가 재판받았던 사건. 세세교 교주 직함이 총재거든요. 제 동생 사건 때문에 그 종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압니다. 거기 부총재라는 사람이 교주 다음으로 높은 사람인데 그자가 저에게 그놈을 없애주겠다고 제안해 왔습니다.”

   “

   “부장님도 원하시면 같이 하시는 게 어떠실지 여쭙고 싶었습니다.”

   “복수를?”

   “.”

   희영이 이번에도 한숨을 내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을 꺼냈다.

   “그걸 승낙하는 게 무슨 의미인 줄은 알고 계시죠?”

   “.”

   동혁의 대답은 단호했다. 다시 희영이 물었다.

   “그쪽이 원하는 대가는 뭐라고 하던가요? ?”

   “재판하고 있는 사건에 관한 정보를 달라고 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차동혁이 허투루 말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희영이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생각할 시간을 조금 주세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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