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문 14
김지환
제4부 천국의 문
“오늘은 지난번 소개한 대로 형벌이론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정암지방법원 판사 최희영은 작년부터 서진대학교 자율전공학부 1학년의 ‘법과 사회’ 과목을 맡아 강의를 해오고 있었다. 학교 측으로부터 강의 제안을 받았을 때 희영은 한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현재는 판사 신분의 겸임교수로 강의 때에만 오고 있지만 곧 조교수로 임용해주기를 희망했다. 학교에서는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그녀가 하얀 대형 칠판에 다가가며 학생들을 주욱 훑어보았다. 치열한 입시를 통과하고 피라미드 먹이사슬의 상위를 거머쥔 100여 명의 학생들이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강단에 서는 쾌감이 머리 위로 몰려왔다. 그녀는 검정색 마커를 들고 칠판에 둥그런 타원을 그렸다.
“이게 뭘까요?”
“빵이요.”
그의 질문에 맨 뒷자리에 앉은 학생 한 명이 답했다.
“오늘 아침 안 먹고 왔나 보네.”
“네 교수님.”
‘교수님.’ 희영은 부장판사라는 호칭보다 더없이 좋았다. 그녀가 고개를 뒤로 돌려 자신이 그린 타원을 흘끗 보고 다시 물었다.
“빵…처럼 보이기도 하네. 또 다른 학생?”
“땅이나 영토처럼 보이는데요.”
이번에는 맨 앞자리에 앉은 학생이 답했다.
학생의 답을 들은 뒤 희영은 근접했다고 말하며 다시 그림으로 가 원의 가운데에 나무 한 그루를 그렸다.
“이렇게 하면 조금 더 명확해 보이나요. 제가 이 그림을 그린 의도는 섬이었습니다.”
학생들 몇 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갈라져서 전 세계 각지로 흩어져 살기로 결정했다고 가정해보죠. 이 섬에는 감옥 하나가 있는데 마침 감옥에 살인자 한 명이 수감 되어 있었습니다. 자, 문제 하나. 이 섬의 주민들이 흩어지기 전에 감옥에 남아 있는 살인자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희영의 질문에 가운데 줄에 앉은 학생이 손을 들었다. 그가 학생에게 답해도 좋다는 손짓을 했다.
“그냥 남겨두고 갈 것 같습니다.”
“이유는?”
“섬의 주민들이 그 살인자와 함께 있을 때는 문제였겠지만 이제 주민들 모두 다른 곳으로 옮겨 살게 되었기 때문에 그 살인자는 주민들과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되었으니까요.”
희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도 볼 수 있겠네요. 어차피 섬에 살인자 혼자 남게 되더라도 헤엄쳐서 육지로 나올 수도 없는 노릇일 테니까. 다르게 생각하는 학생?”
“주민들이 이주하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처형할 것 같습니다.”
“왜죠?”
“범죄를 저지르면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입니다.”
“좋은 답변입니다. 이것은 칸트가 한 비유입니다. 응보, 정의, 속죄의 의의를 모두 설명하는 비유죠. 칸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두 흩어지더라도 감옥에 남은 마지막 살인자를 처형해야 한다. 그래야 그 살인자는 자신의 행위에 대응하는 가치를 되받게 될 것이고 적절히 처형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 사회 구성원들에게 피의 죄악이 남는 일이 없게 한다는 것이죠. 칸트는 만일 살인자를 처형하지 않는다면 그들 모두 정의를 침해한 공범으로 여겨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살인자가 자신의 행위 그대로 돌려받는 응보, 범인이 죄를 범했기 때문에 벌을 받는다는 정의, 그리고 범죄를 저지른 자에게 죗값을 치를 기회를 박탈하지 않는 속죄의 기회 제공. 이것이 바로 절대적 형벌이론입니다.”
희영이 다시 칠판으로 가 ‘절대적 형벌이론’이라는 글씨를 썼다.
“그런데 이런 절대적 형벌이론에는 뭔가 중요한 것이 빠져있습니다. 뭘까요?”
“예방.”
“예방 누구에요? 누구?”
아까 아침을 먹고 오지 않았다는 학생이 수줍게 손을 들었다.
“학생은 이따가 가기 전에 저한테 휴대폰 번호 남겨 놓고 가요. 카카오톡으로 선물 드리겠습니다.”
학생들 사이로 ‘오’하는 탄성이 나왔다.
“맞습니다. 예방이라는 개념이 절대적 형벌이론에서는 빠져있습니다.”
희영이 칠판에 ‘베카리아’, ‘포이어바흐’, ‘리스트’의 이름 세 개를 적었다.
“이 사람들은 철학자이자 법학자들입니다. 여러분이 보시는 교과서에도 정리가 되어 있습니다. 베카리아는 범죄예방을 목표로 형벌을 부과해야 한다고 말했고, 포이어바흐는 범죄자가 범죄를 단념할 수 있도록 형벌은 일종의 겁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여기 리스트는, 범행한 자를 사회로부터 격리해서 재범하지 못하게 하는 보안개념과 형벌을 통해 범죄자를 재사회화해서 다시 범죄로 나아가지 않도록 하는 개선의 개념을 제시했죠. 그리고 이런 형벌이론은 응보와 예방을 적절히 절충하는 방식으로 발전해 나갔습니다.”
그렇게 희영은 한동안 형벌이론을 강의했고 이번에는 우리나라의 형량에 대한 주제로 넘어왔다.
“우리나라 형량, 그러니까 형벌의 크기가 어떤 것 같아요?”
학생들이 일제히 ‘적어요, 작아요’와 같이 답했다.
“그렇죠. 이해합니다. 뉴스에서 나오는 미국의 형량을 비교하면 적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가 다시 칠판으로 가 썼다.
「독일 15년, 일본 20~30년, 중국 20년, 포르투갈 25년, 프랑스 30년, 이탈리아 30년, 한국 30~50년」
“이것은 각 국가들의 유기 징역 또는 금고의 상한 기준입니다. 우리나라는 형법 42조에 유기 징역 및 유기 금고의 상한을 30년으로, 형을 가중하는 때의 상한은 50년으로 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 상한 20년에 가중상한이 30년, 독일은 유기징역의 상한이 15년, 프랑스는 30년입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나라가 적어 보이나요?”
학생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미국의 경우는 죄목을 나열해서 해당 죄목들 형량 그대로를 합산하니까 상당히 많게 보이죠. 반면에 지난 시간에 배웠던 것처럼 우리나라는 여러 개의 죄명 중에서 가장 중한 것으로 처벌하니까 형량이 적게 보이는 겁니다. 미국은 초강경 형사정책의 대표적인 국가입니다. 그런데 이게 과연 효과적일까는 의문이에요. 하나 질문할게요. 앞에 학생?”
맨 앞줄에 앉은 학생이 희영에게 시선을 맞췄다.
“예를 들어 밤에 특수강도를 하고 잡히면 징역 50년을 산다고 가정해볼게요. 만일 학생이 그 강도범이었는데 원래는 돈을 뺏기 위해서 몇 대 때린 뒤에 돈만 가져가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돈을 빼앗고 뒤돌아서는 순간, 갑자기 학생의 머릿속에 스치고 지나가는 게 있습니다. 징역 50년. 만일 이 범행이 걸리면 징역 50년을 살아야 합니다. 이때 학생이라면 그 강도 피해자를 어떻게 할 것 같나요?”
“증거를 없애기 위해 죽여 버릴 것 같습니다.”
희영이 학생에게 손짓하며 ‘그렇죠.’라고 말했다.
“맞습니다. 형량이 너무 높으면 만에 하나라도 범행이 발각될 경우를 만들지 않기 위해 증거를 없애려고 피해자나 목격자를 살해하는 방향으로 갈 겁니다. 이런 면도 있죠. 1년 징역을 살고 나가는 사람과 10년 징역을 살고 나가는 사람 중에 누가 더 빨리 사회에 적응하고 복귀할 수 있는가의 문제도 있습니다. 징역형이 너무 크면 그만큼 그 수형자가 사회에 적응할 가능성이 떨어지겠죠. 교도소에서 10년을 살고 나왔는데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다시 재범을 하는 것일 확률이 높겠죠. 우리나라는 사형 제도를 실질적으로 폐지했음에도 2001년에 살인죄 발생건수가 1,064건이었는데 2020년 발생건수는 805건으로 오히려 줄었습니다. 높은 형량이 곧 답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그녀가 말을 멈추고 잠시 학생들을 한번 훑어보았다.
“매번 강력범죄가 등장할 때마다 강력한 처벌을 원하는 여론의 목소리가 높죠. 그래서 법무부 장관이나 정치인들은 입법을 통해 형량을 높이겠다는 공언을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일시적인 만족을 줄지는 모르겠지만 처벌 수위를 높이는 것의 효과를 냉정히 봐야 합니다. 높은 형벌보다는 그 범죄자가 출소를 한 뒤에 어떻게 사회에 잘 복귀해서 적응하도록 만들 것이냐가 관건입니다. 응보는 답이 아닙니다. 법은 이성의 산물이기 때문에 단순히 응보로만 접근할 수 없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피해자와 가해자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의 구성원들이 함께 참여해서 문제 해결을 모색하는 회복적 사법제도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모두 수고했습니다.”
*
“하나뿐인 딸 소원 좀 들어주세요.”
올해 막 대학에 입학한 희영의 외동딸 연서가 친구들과 지방으로 2박 3일 여행을 간다고 했다. 희영과 그녀의 남편은 이를 말리고 있던 참이었다.
“성인 되면 그때가. 너 아직 18살이야. 어른도 아닌데 여자들 3명이 가서 뭐 어쩌려고?”
희영의 답변은 단호했다.
“대학교 1학년이잖아요. 생일 얼마나 남았다고. 대학 오면 여행 가고 싶을 때 가라고 했잖아.”
연서는 10여 분째 엄마와 아빠를 오가며 조르고 있었다. 힘들었던 입시를 이제 막 마치고 본인이 희망하던 수의학과에 입학했다. 평소 강아지와 고양이를 너무 좋아하던 딸이었다. 희영으로서는 딸 연서가 대학에 입학한 것도 다행이었지만, 어렸을 때 소아백혈병에 걸려서 지난한 치료 기간을 거쳐 병마를 이겨내고 이 자리에 오는 것 자체가 너무나 감사했다. 연서의 대학 입학이 확정되었을 때 희영은 너무 기뻐하는 남편과 함께 눈물을 흘렸다. 희영은 앞으로 남은 모든 시간들이 이제는 자신의 편인 것 같았다.
희영은 딸의 여행에 반대 입장을 밝히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제 자유라는 것도 맛볼 수 있게 해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남편의 반대는 완강했다.
“윤아하고 서영이 부모님은 모두 허락하셨다는데 우리 엄빠만 왜 이러실까?”
곰곰이 생각하던 희영이 말했다.
“허락은 아닌데 아빠하고 다시 상의해볼게.”
그나마 긍정적인 답변을 희영으로부터 듣자 연서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역시 엄마밖에 없다니까.”
연서가 희영의 볼에 ‘쪽’ 뽀뽀를 하고는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희영은 아까부터 남편이 자신에게 눈을 흘기고 있음을 느꼈다.
“간다고 허락한 건 아니잖아. 우리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희영이 남편에게 설득을 시작했다.
“그게 무슨 다시 생각한다는 거야. 이미 답을 정해놓은 거지. 그러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려고 그래?”
“무슨 일이 왜 생겨. 우리나라 치안 정말 좋은데.”
“여행지 가서 덥석 남자라도 만나면 어쩌려고?”
“이제 대학생이잖아. 그리고 친구 중에 하나 시골집이 해수욕장 바로 앞이라고 하니 어른들하고도 같이 있는 셈이고.”
그래도 남편은 탐탁지 않은 눈치였다. 한번 크게 한숨을 쉬고는 하염없이 TV 속의 뉴스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TV로 시선을 계속 고정하고 있는 남편에게 희영이 말했다.
“물론 너무 아팠으니까 우리가 그동안 보호한 게 맞기는 하지. 하지만 그걸 이유로 너무 감싸고 도는 면도 있어.”
남편은 여전히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연서도 그동안 힘들게 공부했으니 한번 봐줍시다.”
“그럼 무슨 일 생기면 당신이 책임질 거야?”
남편의 질문에 희영이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휴...각서라도 쓸까요? 변호사님? 그냥 허락하고 연서 보내고 우리도 1박 2일로 어디 좀 다녀와요.”
“아무 효력도 없는 각서는 써서 뭐 하게? 몰라.”
“괜찮다고 해도. 걱정 마요 남편님. 연서야!”
방 안에서 엄마와 아빠의 대화를 듣고 있었는지 희영이 부르자마자 문이 벌컥 열렸다.
“엄마 고마워요!”
연서가 달려와 희영에게 안긴다. 희영의 눈은 흘기고 있었지만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다. 이제 이렇게 컸구나 싶었다. 널 보며 몰래 눈물 훔치던 때가 있었는데. 그랬던 시간들이 이제는 보상처럼 다가오고 있는 듯했다. 모든 것들이 자신의 자리를 찾아 하나씩 그 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그 모든 것들이 볼링핀들이었다는 것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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