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 소설 9

천국의 문(장편) 6

천국의 문 6 김지환 제2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    아파트 단지에 가로등 하나만 밝히는 밤. 어두운 공기를 뚫고 사람이 차 위에 떨어지며 ‘쿵!’ 굉음을 냈다. 자동차 경보기가 ‘애앵’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지나가다 이를 보고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 베란다에 나와 무슨 일이냐고 웅성거리는 사람들, 집에서 사건 현장까지 나와 지켜보는 사람들, 자기 갈 길을 가다가 소리를 듣고 다시 뛰어오는 사람들이 모두 뒤섞여 소란이 벌어지고 있었다.   경비원 세 명이 뛰어나와 두리번거리다 차의 지붕 위에 사람 하나가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몇 층에서 떨어졌는지는 몰라도 차의 지붕이 움푹 누그러지고 차의 앞 유리에 금들이 가 있었다. 차 지붕의 찌그러진 틈새로 붉은 피가 새어 나와 창문을 타고..

습작 소설 2024.10.19

천국의 문(장편) 5

천국의 문 5 김지환    하람과 유정은 거리에서 헤매다 목적지에 겨우 도착했다. 가까이서 봐야 겨우 볼 수 있는 ‘한국종교’ 간판 하나가 건물의 정면도, 측면도 아닌 3층과 4층 모서리의 중간에 조그맣게 달려 있었기에 눈에 띄지 않았다. 손으로 밀면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한 구축 건물의 양옆에는 이미 철거한 건물들의 잔해가 쌓여 있었다.    “안녕하세요. 한국종교 잡지 운영자 박철민 목사입니다. 여기 앉으시죠.”   약속 시간이 늦을까 싶어 지하철역에서 건물까지 15분을 빠른 걸음으로 오고 4층을 걸어 올라왔기에 숨이 턱까지 차오른 하람과 유정이 헉헉대며 박철민 목사가 건넨 명함을 받았다. 그들도 주섬주섬 명함을 꺼내어 박 목사에게 건넸다.   “여기 앉으시죠. 마실 것 좀 드릴까요? 믹스커피 아니면 ..

습작 소설 2024.10.14

천국의 문(장편) 4

천국의 문 4  김지환     “김 경장, 어제 했던 이야기 좀 계속해봐요.”   유정이 조금 일찍 출근해 사건 기록을 보고 있던 중 이제 막 출근한 하람이 유정의 뒤에서 말을 걸었다.   “오셨습니까. 어제 잘 들어가셨어요?”   하람은 잘 들어갔다는 의미로 대답 대신 오른손바닥을 펴 보였다. 하람이 자신의 의자를 가져와 유정의 옆에 앉았다. 유정은 보고 있던 기록을 덮고는 마우스를 움직여 어제 하람과 함께 보았던 신곡 지옥편의 삽화를 연 뒤 워드로 정리해 놓은 표를 열고 한 장 출력하여 하람에게 건넸다.   “저도 다 기억하는 게 아니라서. 집에 책이 있어서 그 책 보고 정리를 했습니다. 지금 제가 표로 정리해서 드린 것하고 여기 화면 그림하고 번갈아 보시면 됩니다. 어제 말씀드렸던 게, 사실상 지옥..

습작 소설 2024.10.09

천국의 문(장편) 3

천국의 문 3 김지환       “경위님. 단테의 신곡이라고 아세요?”   사무실에 도착한 유정이 인터넷으로 이것저것을 검색하던 중 하람에게 물었다.   “읽어보진 않았지만. 뭔지는 대충 압니다.”   “뭐, 저도 재미있게 읽은 건 아니구요. 예전에 성당 다닐 때 주임신부님이 하도 좋다고 강권하셔서 반강제로 읽었던 거였거든요.”   모니터를 보던 하람이 자리를 고쳐 앉아 유정의 말을 듣기 시작했다.   “이게 총 세 편으로 되어 있습니다.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 천국편은 정말 지루하고 재미없구요, 지옥편하고 연옥편이 가톨릭에서 말하는 죄에 대해 말하고 있는 거라, 그나마 나름 보는 재미가 약간 있어요. 왜 그…막 불타고 벌받고 혼나고 뭐 이런 이야기니까 어느 정도 볼만합니다.”    하람이 유정의 말..

습작 소설 2024.10.04

천국의 문(장편) 2

천국의 문 2 김지환    거대한 괴물이 입을 벌리고 있는 것 같았다. 땅 위에 가로 3m, 세로 1.5m의 금속성 문 두 개가 양쪽으로 펼쳐있었고, 벙커인 듯 구덩이인 듯 크고 검은 공간이 땅속으로 향하는 형상이었다. 최형일 팀장과 하람, 유정이 이곳에 다가갈수록 시체 썩은 내와 포르말린 냄새가 뒤엉켜 역했기에 그들은 KF94 마스크를 쓰고 다가갈 수밖에 없었는데 그 냄새는 마스크도 뚫고 들어왔다. 레이저 거리 측정기로 재어 보니 깊이는 지하 8m였고 위에서 보면 사각형으로 파인 네 면의 벽 모두 시멘트로 마감되어 있었으며 한 면에는 사람 한 명 누울 수 있는 크기로 높이 50cm, 폭 1m 정도의 타원형으로 된 구멍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마치 캡슐호텔처럼 위에서 아래까지 늘어져 있었다. 하람과 유정이 ..

습작 소설 2024.09.28

천국의 문(장편) 1

천국의 문 1 김지환 제1부 세상을 깨끗이 닦는 자가 될지니    오늘도 국도 위에서는 차들이 달리기만 할 뿐, 누구도 도로 옆 표지판들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100m 앞 화장실 있는 편의점’, ‘200m 앞 주유소’ 등 안내판들 사이로 별다를 게 없는 표지판 하나, ‘천국의 문.’ 누군가는 모텔 이름으로, 누군가는 카페 이름으로 이해할 법한 국도 옆 안내판. 하얀색 칠이 된 두 개의 나무 지지대에, 지상으로부터 1m 높이쯤 가로 220cm, 세로 130cm의 직사각형 나무판이 붙어 있었고, 나무판의 바탕은 모두 파란색으로, 판 전체에는 ‘천국의 문’이라는 궁서체의 하얀색 글씨가 자리 잡고 있었다. 국도의 한쪽에는 야산이 죽 이어져 있었고 맞은 편의 펼쳐있는 들판에 띄엄띄엄 인가 몇 채만 있을 뿐 사..

습작 소설 2024.09.23

해피 크리스마스(단편)

해피 크리스마스  김지환    P는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싫은 것도 좋은 것도 없는 무채색의 피가 흘러 다니는 느낌. 일은 어떻게든 했지만 마치고 집에 오면 소파에 누워 하릴없이 TV 리모컨만 눌렀다. 아이들이 학원에서 집에 돌아와도 대충 인사만 하고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잠도 오지 않았다. 잠자려고 눕기 전에는 그저 둥둥 떠 있던 생각의 편린들이 눕기만 하면 자석처럼 머릿속에 들러붙었다. 보다 못한 아내가 P의 등을 떠민 곳은 동네 정신건강의학과였다. P는 대여섯 장 정도 되는 설문지에 체크를 하고 제출한 뒤, 의사와 이런저런 문답을 했다.   “우울장애, 그러니까 보통들 말씀하시는 우울증입니다. 약을 드릴텐데 꼭 말씀드린 용법대로 드셔야 하고 마음대로 줄이거나 중단하시면 안 됩니다. 그..

습작 소설 2024.09.21

내 인생의 꽃(단편)

내 인생의 꽃 김지환    아내와 신혼여행 이후 31년 만에 처음 가는 여행길의 날씨가 순탄해서 다행이었다. 인터넷에서 ‘제주도 날씨’로 검색했다가 여행 첫날인 일요일의 날씨가 ‘비 올 확률 40%’라고 해서 비가 온다는 건지, 안 온다는 건지 애매하던 터였다. 기상청 블로그를 찾아보니, 오늘의 강수확률이 50%라고 하면 오늘 비가 올 수도 있고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동안 이런 상태의 대기에서 비가 100번 중 50번 왔었던 것이라고 했다. 강수확률이 20%여도 비가 올 수도 있다는 것이었으므로, ‘비 올 확률 40%’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난감했다. 비가 와도 비행기만 뜨면 제주도야 가겠지만 마라도로 가는 배편이 날씨에 따라 결항할 수 있다고 하기에 상당히 신경 쓰였다. 어찌 되었..

습작 소설 2024.09.10

불타는 비석(단편)

불타는 비석 김지환     담에 붙은 불이 기름을 타고 마당까지 번지고 있었다. 기름기 섞인 탄내가 연기와 함께 밤공기를 가득 채웠다. 불타는 담 아래 주춧돌들 사이, 끼어 있는 비석의 반들반들한 표면에 불꽃이 반사되어 번쩍거렸다. 불은 이내 마당에 있는 감나무로 옮겨붙었고 바싹 마른 가을 나무껍질이 타닥거리면서 불똥을 토하며 떨어져 나갔다. 나무에 붙은 불이 번져 그 옆에 묶여 있는 개가 화기에 깽깽거리며 몸부림쳤다. 마을 사람들 모두 집안에 꼭꼭 숨은 듯 불났다고 외치는 사람 하나 없다. 지나가던 한두 명 정도 번져가는 불길을 가만히 바라보다 자리를 떴을 뿐. 이제 불은 집을 파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정말 덥네. 근데 나는 그 옆 동네가 더 마음에 들어.”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문대면서 ..

습작 소설 2024.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