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 소설

천국의 문(장편) 3

김지환 변호사 2024. 10. 4.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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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문 3

 

김지환   

 

   “경위님. 단테의 신곡이라고 아세요?”

   사무실에 도착한 유정이 인터넷으로 이것저것을 검색하던 중 하람에게 물었다.

   “읽어보진 않았지만. 뭔지는 대충 압니다.”

   “, 저도 재미있게 읽은 건 아니구요. 예전에 성당 다닐 때 주임신부님이 하도 좋다고 강권하셔서 반강제로 읽었던 거였거든요.”

   모니터를 보던 하람이 자리를 고쳐 앉아 유정의 말을 듣기 시작했다.

   “이게 총 세 편으로 되어 있습니다.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 천국편은 정말 지루하고 재미없구요, 지옥편하고 연옥편이 가톨릭에서 말하는 죄에 대해 말하고 있는 거라, 그나마 나름 보는 재미가 약간 있어요. 왜 그막 불타고 벌받고 혼나고 뭐 이런 이야기니까 어느 정도 볼만합니다.”

   하람이 유정의 말을 듣다가 모니터로 눈과 몸을 옮겼다.

   “김 경장. 아까 팀장님이 변사 발생 보고서 오늘 내로 제출하라고 하셔서 제가 지금 바빠요.”

   “중요한 건 지옥편에 아홉 층의 지옥이 나옵니다.”

   ‘아홉 층이라는 말에 키보드를 치던 하람이 손을 멈춘 채로 고개를 유정에게 돌렸다.

   "물론 각 층도 몇 개의 지옥으로 더 세분화되기 때문에 엄밀하게 그 수를 합치면 전체 지옥의 수는 더 늘어나지만 어쨌거나 큰 카테고리로 묶으면 9층의 지옥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잠시 제 자리로.”

   유정이 자신의 자리로 오라는 듯 하람을 향해 손짓했다. 하람이 모니터와 유정의 얼굴을 몇 차례 번갈아 보다가 못 미덥다는 표정을 지으며 의자 바퀴를 굴려 유정의 자리로 이동했다.

   “요샌 인터넷이 워낙 잘 되어 있어서.”

   유정이 검색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어로 신곡 지옥편이라고 치자 그에 관한 블로그와 자료들이 주르륵 화면에 나왔다. 그가 어느 블로그를 클릭하자 땅속으로 마치 거대한 고깔 모양의 드릴이 박혀 있는 그림이 떴다. 하람은 어렸을 때 보았던 TV만화의 거대 로봇을 떠올렸다. 거대 로봇들 중에는 적들과 근접전을 할 때에 주먹이 팔 안으로 들어가고 대신 고깔 모양의 드릴이 나와 상대방에게 무자비하게 구멍을 내는 녀석들이 있었는데, 꼭 그 드릴의 모양이었다. 그림을 본 하람이 물었다.

   “이게 지옥인가요?”

   “. 여기 보시면 로마 숫자로 일부터 구까지 있구요. 여기 로마 숫자들 옆에 있는 체르끼오(cerchio)는 이탈리아어인데 영어로는 써클(circle), 동그라미나 원을 의미합니다. 첫 번째 원, 그러니까 첫 번째 층의 지옥은 림보(LIMBO)라고 되어 있죠. 사실 여기는 지옥이 아닙니다. 육체적 형벌도 없구요. 죄를 짓지 않았고 훌륭한 삶을 살았지만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거나 세례를 받지 못하고 죽은 영혼들이 가는 곳입니다. 여기서 단테는 위대한 시인들과 철학자, 현인들과 만나죠.” #

   “그런데 일단 드는 의문이거긴 천국의 문이라고 되어 있었으니까 지옥하고는 거리가 먼 거 같은데요?”

   “저도 그게 좀 궁금하기는 해요. 문패가 천국이니 얼핏 지옥과는 관계가 없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도 시신들이 있으니 천국이 아니라 지옥이라고 볼 수밖에는 없지 않을까요?”

   하람이 유정의 말을 듣고 나자 하는 작은 신음을 내며 엉덩이를 의자의 뒤쪽으로 밀어 넣은 후 등을 뒤로 젖히며 등받이에 밀착시켰다.

   “그리고 두 번째 층의 지옥은 음란함과 애욕에 탐닉하는 자들이 가는 음욕지옥입니다. 여기 두 번째 원에 루쓰리오지(LUSSURIOSI)라고 되어 있는데 영어로 러스트(lust), 성욕이나 욕정, 관능을 의미하죠. 단테는 여기서 음란한 클레오파트라를 보았다고 쓰고 있습니다. 세 번째 층의 지옥은 여기 세 번째 원에 골로지(GOLOSI)라고 써 있는데 영어로 글럿터너스(gluttonous), 걸신들려 많이 먹는 정도로 해석됩니다. 식탐의 죄를 지은 자들이 가는 지옥이죠.”

   그때, 최형일 팀장이 밖에서 돌아와 그들 뒤에 있다가 알은 척을 했다.

   “두 사람 지금 뭐 해요? 이거 무슨 그림이야?”

   “아까 확인했던 현장에 대해 말하고 있었습니다.”

   하람이 답했다.

   “이거 무슨 외국 그림인 거 같은데 그 변사 사건하고 무슨 관계가 있는데?”

   팀장이 정말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단테라는 이탈리아 작가가 1308년경에 신곡이라는 서사시를 썼습니다. 신곡은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으로 3개로 구성되어 있는데 지옥편에는 총 9개로 분류할 수 있는 지옥들이 나옵니다. 이 그림은 그 지옥에 대해 삽화로 누군가가 그린 것이구요. 변사 현장에 마치 지하 1층에서 지하 9층까지 시신들이 들어갈 공간들이 있었는데 제 생각으로는 피의자가 이걸 따라한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천국의 문이라는 비유적인 표현을 봐도 그렇구요.”

   팀장의 물음에 유정이 답했다. 유정의 말에 팀장은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다 그림에 나와 있는 원의 개수를 손가락으로 세었다.

   “모두 서른한 개인데? 아홉 개가 아니잖아?”

   “전체 원의 개수는 서른한 개가 맞는데 여기 보시면 로마 숫자로 일, , , , , , , , 구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유정은 각 원의 옆에 꼬리표처럼 붙어 있는 첫 번째 원(cerchio)부터 아홉 번째 원(cerchio)까지를 차례대로 가리켰다.

   “범인들이 이걸 보고 범행을 했다고 하기에는 좀 막막하지 않나?”

   팀장이 짐짓 이해 못 하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일단 한번 고민해보고고 경위는 보고서 작성 다 했어요?”

   “한 시간 정도 더 쓰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럼 부지런히 쓰고 다 되면 말해. 그래도 오늘 환영 회식은 해야지.”

   “, 제가 술을 못해서

   하람이 술을 못한다고 빼자 팀장이 괜찮다며 말했다.

   “술 권하지는 않을 테니까 편하게 같이 갑시다. 다른 팀원들도 기다릴 거고. 어차피 저녁은 먹어야 할 거 아냐.”

   하람이 알겠다고 하자 팀장은 유정에게도 물었다.

   “괜찮지? 술 좀 하나?”

   유정은 웃으며 술을 잘 마신다고 했다. 팀장이 유정의 어깨를 두드렸다. 자연스럽게 하람과 유정의 대화가 끊겼고 하람은 다시 의자를 끌어 자리로 돌아가 타자를 치기 시작했다.

 

   숯불 석쇠 위에 빨간 양념을 입은 닭갈비가 올라가자 하는 소리와 함께 달라붙었다. 올라오는 감칠 내에 팀원들이 침을 삼켰다. 고기 집게를 잡은 막내 박형욱 순경이 분주히 고기들을 자리에 얹고 뒤집고 있었다.

   “만날 돼지 목살만 먹다가 닭갈비가 신선하긴 하네요.”

   김정규 경사가 최 팀장을 비롯한 사람들에게 소주를 돌리며 말했다. 모두 잔이 채워진 것을 확인한 뒤 그가 건배를 제안했다.

   “우리 뉴페이스들이 온 이 기쁜 날, 한 잔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잔들 드시고. 팀장님 건배사 하시죠.”

   “그러면 짧게. , 옛날에 천지를 뒤흔들었던 힘은 이제 없지만 지금의 우리도 우리인 것이다. 한결같이 영웅적인 기백이, 시간과 운명으로 쇠약해지긴 했어도, 애쓰고, 추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버텨 낼 강한 의지력이 아직도 있다. , , 건배.”

   유정은 여러 건배사를 들었지만 이렇게 시를 읊는 건배사는 처음이었다. 최 팀장의 취향이 엉뚱한 듯 보였다. 강력팀 팀장이 라니. 저 양반은 둔기로 짓뭉개진 시신을 보면서도, 피비린내와 낭자한 핏방울들과 마주하면서도, 돈 앞에서 쓰레기통에 처박히는 가볍기 그지없는 양심을 보면서도 시상을 떠올리려나. 어쩌면 잔혹한 현장들을 자주 보면서 무너지는 마음을 지지대 삼은 시구들로 버티는 것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유정은 예전에 있던 지구대에서의 술이 없는 송년회 자리에서 눈치 없이 성경 구절을 읊으며 통성 기도를 했던 지구대장이 떠올랐다. 그래도 그 지구대장보다 지금 시를 읊었던 최 팀장이 백배는 나아 보였다. 그러고 보니 이질감이 들 수도 있을 텐데 사람들도 항상 그랬다는 듯 팀장의 시 낭송 건배사가 끝나자 거부감 없이 신나게 건배를 했다. 유정은 소주 한 잔을 그대로 들이켰고 하람은 술잔을 잠시 들었다가 그대로 자리에 놓았다.

   “팀장님 그건 또 어디서 가져오신 거예요?”

   이정희 경장이 한 잔 들이킨 뒤 인상을 찌푸리며 최 팀장에게 물었다.

   “테니슨이라고 영국 시인 있어. 그 사람이 쓴 율리시스라는 시의 일부야.”

   “근데 고 경위님은 말수가 적으신가 봐요?”

   이정희가 하람에게 물었다.

   “, , . 말이 많은 편은 아니에요.”

   “그건 우리 태식이랑 비슷하네. 안 그러냐 태식아.”

   김정규 경사가 말하자 이태식 경사가 하고 웃었다.

   “제가 형님보다는 말이 없는 편이긴 하죠.”

   “여기 태식이가 무서운 놈이에요. 얘가 육군 특수임무대에서만 10년을 있었대요. 근데 무슨 일했는지 물어봐도 절대로 말 안 해.”

   김정규의 말에 이태식이 별다른 반응 없이 고기 한 점을 먹고는 소주를 정규에게 따랐다.

   “형욱아 너도 좀 먹어. 이제 그만 구워도 돼.”

   이정희가 익은 고기 한 점을 박형욱 순경의 접시에 갖다 주었다.

   “, 누나밖에 없지?”

   정희의 말에 박형욱 순경이 쑥스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 김유정 경장이 서른하나죠?”

   최형일 팀장의 말에 유정이 하며 고개를 끄덕여 말했다.

   “팀장님. 말씀 편하게 해주세요. 새까만 후배인데.”

   “그래 그럼. 정희가 유정이보다 한 살 누나네?”

   정희가 유정에게 잔을 내밀어 부딪혔다.

   “그리고 고하람 경위가 서른여덟? 서른아홉?”

   “서른다섯입니다.”

   “, 내가 어제 서류 보고도 깜빡했네. 그러면 정희보다 세 살 위 오빠네.”

   “팀장님은 왜 저만 가지고 기준을 세우세요?”

   “정희 신랑감 찾아주려고 하지.”

   이정희 경장은 으이그하면서도 싫지는 않은 눈치였다. 최 팀장이 말했다.

   “정희가 집에도 안 가고 만날 여기만 붙어 있으니까, 내 미안해서 그러지.”

   “고 경위님은 스님하시다가 왜 경찰하시는지 여쭤봐도 돼요? 아니, 서장님이 지난주에 갑자기 우리 자리에 와서 스님 출신 경찰은 난생 처음 봤다며 큰 소리로 말씀하시길래 우리 3층에 있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거든요. 거기에 경대 차석 졸업이시라고. 어떤 분이신지 많이 궁금했어요.”

   이정희가 당돌하게 물었다. 김정규 경사, 이태식 경사와 박형욱 순경의 시선이 모두 하람을 향했다.

   “, 그랬군요. 뭐 별건 없습니다. 그냥 중이 하기 싫어서 관뒀던 거예요. 궁금하실 만도 한데 중이 절 싫으면 떠나야 한다고 하잖아요. 딱 그거죠.”

   하람의 간단한 대답에 김정규 경사가 다시 하자고 잔을 들어 모두 건배를 하고는 다들 한 모금씩 들이켰다. 하람은 술 대신 컵에 있는 물을 마셨다.

   “그러면 유정 후배. 누나가 순경 입직 선배니까 편하게 말할게. 넌 신부 되려고 했었다며? 이것도 서장님 피셜.”

유정이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맞아요. 대학원 1학년 때 노숙인 봉사활동 나갔었는데 거기 온 사회복지사 짝사랑해서 고백하고 차인 후에 신학교 관뒀어요.”

   “, 사랑.”

   무뚝뚝하게 그다지 말이 없던 이태식 경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자 다들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람이 유정을 쳐다보았다.

   “갑자기 막막하더라고요. 신학교 다니는 5년 내내 그렇게 강렬하게 감정을 느꼈던 적이 없었거든요. 연애 안 하고 결혼 안 하고 평생 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더 할 자신이 없어서 암튼 그렇게 되었습니다. 흐흐. 집에서도 그려려니 하시고. 저희 부모님은 워낙 자유로운 분들이라 그냥 너 하고 싶은 거 하라고 하십니다. 제가 처음에 신학교 간다고 할 때 아버지가 그랬거든요. 너 연애 안 할 수 있겠냐. 말이 씨가 된 것 같기도 하고. 암튼 기회 되면 빨리 결혼하고 싶어요. 결혼하면 좋을 거 같은데.”

   유정이 순진한 얼굴을 하고 최형일 팀장과 김정규 경사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유정과 눈이 마주친 최형일과 김정규가 대꾸 없이 잠시 유정을 바라보다 말없이 술잔을 들이켰다. 술이 목에 걸렸는지 최 팀장이 캑캑거리며 말했다.

   “암튼 이렇게 새 식구가 들어왔으니 서로 잘해주고. 갈구지 말고. 알았지?”

   최 팀장의 말에 모두 하고 답하며 다시 한번 술잔을 부딪쳤다. 자정을 향하고 있는 시간, 봄비가 내려 공기가 차분히 가라앉은 가운데 그들이 내는 웃음소리와 말소리만이 둥실둥실 떠다니며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계속)

 

# 이하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 대한 해석과 해설은 '신곡 지옥 연옥 천국', 단테 알리기에리 장편서사시, 귀스타브 도레 그림, 김운천 옮김, 2022년 열린책들의 '지옥'을 참조하였습니다.

 

* 저작권 등록을 마친 저작물입니다. 저작자의 허락 없는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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