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 소설

천국의 문(장편) 4

김지환 변호사 2024. 10. 9. 11:34
728x90
반응형

천국의 문 4 

 

김지환

 

 

   “김 경장, 어제 했던 이야기 좀 계속해봐요.”

   유정이 조금 일찍 출근해 사건 기록을 보고 있던 중 이제 막 출근한 하람이 유정의 뒤에서 말을 걸었다.

   “오셨습니까. 어제 잘 들어가셨어요?”

   하람은 잘 들어갔다는 의미로 대답 대신 오른손바닥을 펴 보였다. 하람이 자신의 의자를 가져와 유정의 옆에 앉았다. 유정은 보고 있던 기록을 덮고는 마우스를 움직여 어제 하람과 함께 보았던 신곡 지옥편의 삽화를 연 뒤 워드로 정리해 놓은 표를 열고 한 장 출력하여 하람에게 건넸다.

   “저도 다 기억하는 게 아니라서. 집에 책이 있어서 그 책 보고 정리를 했습니다. 지금 제가 표로 정리해서 드린 것하고 여기 화면 그림하고 번갈아 보시면 됩니다. 어제 말씀드렸던 게, 사실상 지옥이라고 볼 수 없고 현인들이 간다고 하는 첫 번째 층의 림보, 두 번째 층 지옥인 음욕 지옥, 세 번째 층 지옥인 식탐 지옥이었습니다. 그리고 여기 네 번째 층의 아베리 에 프로디기(AVARI E PRODIGHI)는 재물을 낭비하거나 재물에 인색한 사람들이 가는 지옥입니다. 이탈리아어로 아베리(Averi)는 영어로 어베리셔스(avaricious), 탐욕스럽고 욕심이 많다는 뜻이고 프로디기(Prodighi)는 영어로 프로디걸(prodigal), 낭비한다는 뜻입니다. 다섯 번째 층은 이라콘디 에드 아치디오지(IRACONDI ED ACCIDIOSI)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는 분노나 화를 참지 못하고 죄를 지은 자들이 가는 지옥입니다. 여섯 번째 층은 에레티치(ERETICI)라고 해서 이단자들이 가는 지옥이구요, 일곱 번째 층은 세 개로 갈리기는 하지만 묶어서 비올렌짜(Violenza)라고, 다른 사람을 폭행한 자, 자신의 육체와 재산에 폭력을 가한 자, 예를 들면 자살한 사람들이겠죠. 그리고 신성에 도전하거나 폭력을 가한 자들이 가는 지옥입니다.”

   “불교의 지옥도하고 비슷하네요. 물론 가톨릭의 지옥은 하느님과 같은 심판자가 만드는 거고, 불교의 지옥은 심판자 없이 유유상종의 비슷한 집단이 모여서 부정적인 세계로 만들어진 거라는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하람이 흥미로운 듯 유정의 설명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렇죠. 그런데 제 생각은 가톨릭에서도 결국 사람의 자유의지를 인정하고 자유의지에 따라 행위한 결과에 대해 신의 심판을 받아 가는 곳이 지옥이고, 불교에서는 절대자의 심판을 받지 않지만 결국 비슷한 사람끼리 모이는 것 역시 자신이 결정하는 거니까 둘이 완전히 다른 것 같지는 않아요. 살생하지 말고 과욕부리지 말라는 거, 음란한 행동을 하지 말라는 거, 사기 치지 말라는 거. 설정이 둘 다 비슷하니까. 암튼, 이제 두 개 층만 남았는데요. 여덟 번째 층의 지옥은 세부적으로 열 개의 구렁으로 나눠지는데 여기는 주로 사기 친 사람들이 가는 곳입니다. 인신매매자, 아첨꾼, 성직이나 거룩한 물건을 거래한 부패한 성직자, 점쟁이, 탐관오리, 위조범 등이 가는 곳이죠. 여기 여덟 번째 지옥을 사기지옥이라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마지막 아홉 번째 층의 지옥은 네 구역으로 나뉘는데 여기 보시면 네 구역 모두에 트라디토리(traditori)라고 써있죠. 영어로는 트레이터(traitor)로 배신자, 반역자들이 가는 지옥입니다.”

   “정리하면 맨 위 지하 1층은 림보, 지하 2층은 음욕 지옥, 3층은 식탐 지옥, 4층은 탐욕 지옥, 5층은 분노 지옥, 6층은 이단 지옥, 7층은 폭력 지옥, 8층은 사기 지옥, 9층은 배신 지옥 정도가 되겠군요.”

   “.”

   “그러면 각층의 시신이 해당 층의 범죄와 관련이 있는지를 보는 게 필요하겠네. 그 시신들이 생전에 그 층에 해당하는 범죄를 해서 누군가가 그들을 단죄한 것으로. 밖과 안에 떡하니 천국의 문이라고 표시해 놓은 것을 보면 이 사건의 피의자가 그들을 단죄해서 사실은 천국이 아니라 지옥을 구현한 것으로 보는 게 합리적일 수 있겠고. 각 층에 있는 시신들이 그 층에 해당하는 죄의 전과자인지 여부를 감식 의뢰하면 신원 파악 시간을 줄일 수도 있겠습니다. 우선 지하 1층은 알 수 없으니까 일단 제외하고지하 2층은 성범죄로 보면 될 것이고 지하 3층의 식탐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신곡에 조금 더 볼 부분이 있을까요?”

   유정이 가방에서 책을 꺼내 뒤적이며 말했다.

   “탐식의 죄…「탐욕스러운 목구멍들…「해로운 목구멍의 죄정도로 있는데요. 많이 먹어서 문제가 되는 죄 정도일 거 같은데” #

   “과음? 음주운전 아닐까요? 음식 먹는 거 자체가 죄가 되는 건 그것밖엔 없을 듯하네요. 먹다가 배 터져서 경찰이 잡아가는 건 아닐 테니까.”

   “,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유정이 화면에 열어 놓은 표의 옆에 하나씩 입력하기 시작했다. 지하 1층은 빈칸, 지하 2층에는 성범죄, 지하 3층에는 음주운전으로 입력했다. 하람이 말했다.

   “지하 4층 지옥에는 욕심이 많고 낭비를 하는 자들이 가는데·강도와 관련지어 보죠. 지하 5층 지옥에는 분노나 화를 참지 못하고 죄를 지은 자들이 가는 곳이니까 거기 있던 시신은 폭행·상해나 살인 전과자일 가능성이 있겠네요. 지하 6층 지옥은 이단자들이 가는 곳이니 거기에 들어있는 시신은 사이비 종교 교주일 가능성이 높아 보이고, 지하 7층 지옥에는 폭력을 행사한 자들이 가니까 5층하고 비슷하겠지만 역시 폭행, 상해, 살인 등과의 관련성 여부를 봐야겠습니다. 지하 8층은

   “비어 있습니다.”

   “비어 있어도 거기에는 사기 전과자가 들어갔을 확률이 있겠네요.”

   “지하 9층은 배신 지옥인데 배임죄나 횡령죄의 전과자가 들어 있었던 걸까요?”

   “일단은 그렇게 정리하고 없으면 범위를 넓혀 봐야겠죠.”

   “정리하면 지하 1층은 비우고 지하 2층 시신은 성범죄 전과자들, 지하 3층 시신은 음주운전 전과자들, 지하 4층 시신은 절·강도 전과자들, 지하 5층 시신은 폭행·상해·살인 전과자들, 지하 6층 시신은 사이비 종교 교주들 중에 전과 기록이 있는 자들, 지하 7층 시신은 폭행·상해·살인 전과자들, 지하 8층은 비어 있으니까 일단 지나가고, 지하 9층 시신은 배임죄나 횡령죄 전과자들의 DNA와 대조해서 신원을 파악해달라고 국과수에 추가 의뢰 넣겠습니다. 그런데 팀장님이 결재를 해주실까요?”

   “제가 설득해볼게요.”

   유정이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최형일 팀장은 별다른 말 없이 유정의 추가 감식 의뢰서를 결재해 주었다. 하람은 팀장으로부터 수사하라고 했더니 고전 문학이나 파고 있네.’ 등과 같은 종류의 핀잔을 들을 것으로 예상했고 그는 팀장이 부르면 단서를 찾으려면 뭐라도 못하겠습니까. 굿이라도 해야겠죠.’ 등과 같은 받아치는 변명 내지는 설득의 말을 준비하고 있던 터에 다소 맥이 빠지긴 했다. 대신 최형일 팀장은 너무 서두르지는 말고 멀리 보라.’는 말과 함께 국과수에서 뭐라고 하면 내가 설득해 주겠다.’는 말을 남겼다.

 

   2주 동안 천국의 문 사건 수사에는 진척이 없었다. CCTV, 지문도, 족적도, 피의자들이 숨 쉰 흔적조차 없었다. 하람과 유정은 익히 예상하기는 했다. 피의자들은 시신들을 처리할 때 머리부터 발끝까지 보호복을 착용했을 것이고 장갑도 꼈을 것이다. 증거가 절대로 현출되지 않도록 설계했을 터이므로. 그렇다고 단서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며 하릴없이 기다릴 여유는 없었다. 밀려 들어오는 다른 사건들도 처리해야 했기에 유정은 차라리 장기 미제 처리되더라도 어쩔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유정은 최근 피의자의 신병을 확보한 강도상해 사건에 주력했다. 증거도 어느 정도 확보되었고 그 증거들이 범인이라 가리키는 유력한 피의자도 체포했으므로 확실하게 끝낼 수 있는 강도상해 사건에 집중했다. 하지만 하람은 이틀에 한 번씩 출근 도장 찍듯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전화했고 담당 직원들에게 채근하지는 않았으나 예의 그 잔잔한 말투로 거듭 부탁했다. 하람의 전화가 반복될수록 수화기 밖으로 큰 소리가 들렸으나 하람의 말투는 변하지 않았다. 그는 죄송하다고 하면서도 할말을 다했다. 하람에게도 배당된 다른 사건들이 있었지만, 그는 잡은 끈을 절대로 놓지 않겠다는 태세로 천국의 문 사건을 조금씩이라도 매일 매일 건드려 나갔다. 이를 옆에서 지켜본 유정은 하람이 마치 삼보일배라도 하는 것 같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추가 감식 의뢰를 한 지 15일째가 되던 날, 최형일 팀장이 팀원들을 회의실로 소집했다. 고하람, 김정규, 이태식과 김유정이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로 들어갔다.

   “정희랑 형욱이는?”

   “외근입니다. 방계동 수퍼 살인미수 건 조사 나갔습니다.”

   최형일 팀장의 물음에 김정규 경사가 답했다.

   “알았어. 다들 들어와 봐.”

   회의실에 들어간 최 팀장이 가지고 들어 온 서류를 보며 말했다.

   “천국의 문 사건 시신들의 일부 신원이 확인되었다.”

   하람이 눈을 크게 뜨고 팀장의 얼굴에 집중했고 유정의 입에서는 대박이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김정규 경사는 이렇게나 빨리?’라는 반문을 했으며, 이태식 경사는 다행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전과자 DNA 등록의 범위를 좁혔던 게 다행히 일부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었어. 명단은 지금 나눠주는 거 참조하고.”

   팀장이 준비한 복사본을 회의실에 있는 4명에게 나눠주었다.

   “지하 2층 시신은 강현중 35세 강간치사로 징역 8년 살고 출소했고, 지하 3층 시신은 김재일 55세 음주운전 치사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받은 것으로 확인된다. 지하 5층 시신은 박보근 33세 특수상해 등으로 역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받은 전력이 있고, 지하 6층 시신은 유진세 53세 조세포탈, 특수상해와 횡령 등으로 벌금 10억 원 납부하고 징역 3년 살고 출소했지.”

   “유진세요? 사이비교 교주로 유명했던 그 양반 아닙니까?”

   김정규 경사가 팀장에게 물었다.

   “. 유명했어. 살인으로도 기소되었는데 살인은 무죄 나와서 한동안 시끄러웠잖아. 오늘 신원 파악이 되었으니 자세한 사항은 사건 기록을 봐야 하겠지. 그리고 지하 7층 시신은 이진명 38세 강도상해로 징역 4년 살고 출소했다. 다들 아는 것처럼 1층과 8층에는 시신이 없었고, 유감스럽게도 4, 9층 시신들의 신원은 찾지 못했어. 국과수에서는 계속 찾겠다고는 하니까 더 기다려보긴 해야 할 텐데 전과자 등록 DNA에는 아무래도 없는 것 같다. 일단 여러분들 보자고 한 건 공개수사로 전환 여부에 대해서 당신들 생각이 궁금해서. 일단 고 경위는 어때?”

   “저는 당분간 비공개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지하 1, 8층에 시신들이 없는데 유실되었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만일 아직 범행이 없었던 거라면 추가 범행 가능성이나 움직임도 있을 수 있으니 피의자들의 움직임을 보려면 비공개가 낫겠죠.”

   하람이 말했다.

   “정규는?”

   “고 경위님 말씀도 일리가 있긴 한데 신원 파악이 안 된 시신들도 있고 혹시 모를 재범 막으려면 공개 전환하는게 낫지 않을까요?”

   “태식이는?”

   “아직 시작이니까 조금 더 수사 진행되면 그때 다시 결정하시죠.”

   최 팀장이 유정을 쳐다보았다.

   “선배님들 결정에 따르겠습니다.”

   “그러지 말고 당신이 담당이니까 의견 있으면 내봐.”

   “그럼아직 공개는 조금 이른 것 같습니다.”

   “오케이, 그럼 고 경위하고 김 경장은 검찰에 신원 확보된 다섯 명 사건 수사기록하고 공판기록 요청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검토해서 보고해.”

   “네 알겠습니다.”

   하람과 유정이 대답하며 일어섰고 다른 사람들도 일어서자 팀장이 까먹은 게 있었다는 듯 불러세웠다.

   “, . 내일 형욱이 생일이지? 껍데기 집 가는 거 잊지들 말고.”

   “생일을챙깁니까?”

   하람이 묻자 김정규가 답했다.

   “우리 팀 전통입니다. 약속 있으세요?”

   “그런 건 아닌데, 누가 생일 챙겨주는 거 낯설어서요.”

   “적응하면 괜찮으실 겁니다. 태식이는 올 때 케잌 사 오는 거 잊지 말고.”

   이태식이 알겠다며 문을 나섰고 나머지 사람들도 빠른 걸음으로 각자의 자리에 돌아갔다.

 

   시신들이 연루되었던 사건들의 수사기록과 공판기록이 도착하자 유정은 한 장씩 꼼꼼히 살펴보았다. 유정이 하람에게 말했다.

   “지하 2층 시신 강현중의 사건인 강간치사 1심 판결이 징역 8년이네요. 강현중과 검사 모두 항소했는데 기각됐고 강현중이 대법원 상고도 했는데 역시 기각돼서 8년 형으로 확정되었습니다. 이거 좀 너무한데요. 피해자와 합의도 없었는데.”

   “1심 판결문 범죄 사실이 뭐에요?”

   “피해자는 차지현, 사건 당시 대학교 2학년 여학생이었고 가해자는 천국의 문 지하 2층 시신인 강현중입니다. 강현중이 평소 알고 지내던 차지현과 저녁 식사를 한 뒤 피해자를 집에 데려다주는 길에 근처 야산으로 끌고 가서 폭행 후에 강간하고 도주했습니다. 피해자는 야산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는데 저체온증으로 사망했네요. 사건이 1월에 발생했습니다. 기록을 보니 검사는 징역 20년을 구형했었습니다. 피해자 오빠부터 가족들, 피해자 친구들이 가해자를 엄벌해달라는 탄원을 많이 했고 합의가 없었는데도 절반 이하가 나온 거 보면 형량이 적어 보이기는 합니다. 1심 재판부는 가해자가 반성하고 있고 전과가 없는 점을 참작했구요. 강간치사 법정형 하한이 10년형이지만 작량 감경, 법률상 감경 모두 가능하니까 뭐8년형이 위법이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법 감정상으로는 납득하기 어렵네요.”

   “다른 특이점은 없었나요?”

   “탄원서에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두 세세교 신자였다는 언급이 있습니다.”

   “세세교? 지난번 회의 때에 김정규 경사님이 말한 그겁니까?”

   “. 지하 6층 시신인 유진세가 세세교 교주였다고 하니 세세교하고 이 변사 사건하고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나머지 기록들도 봐야겠지만요.”

   “아직 지하 3층 김재일 기록은 못봤죠?”

   “. 이제 막 강현중 기록을 봤기 때문에

   “김재일 기록은 제가 볼게요. 김 경장은5층 시신이 박보근이었나요? 암튼 그거 기록 먼저 봐주세요. 다 보고 나서 다시 이야기하죠.”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람과 유정이 기록들을 검토하여 몇 가지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하 3층 시신인 김재일은 음주운전을 하다가 횡단보도에서 대기하고 있던 대학교 1학년 18세 여성을 치어 사망하게 했으며 사고 당시 김재일은 청와대 총무비서관이었는데 세세교와는 아무런 관련성을 확인할 수 없었다. 김재일의 사건에서도 지하 2층 강현중 사건과 유사하게 피해자의 가족이 가해자를 엄벌에 처해달라는 엄벌 탄원서가 여러 장 제출되어 있었다. 피해자의 아버지는 변호사, 어머니는 판사였다.

   지하 5층 시신 박보근은 이제 막 군대를 제대한 사촌 동생과의 식사 자리에서 예배당에 같이 가자는 제안을 했다가 사촌 동생이 거절하자 미리 준비해 간 삼단봉으로 사촌 동생을 폭행하여 전치 4주의 피해를 입혔다. 피해자와 가족들은 박보근과의 합의를 거절했는데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친척 간이라는 점, 가해자인 박보근이 반성하고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하여 재판부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검찰의 항소를 기각했고 박보근에 대한 징역 3년과 집행유예 5년이 확정되었다. 박보근 사건의 기록에는 그가 세세교 신자로 이번이 드러난 사건이었을뿐 그간 경찰에 신고하지는 않았으나 종교 문제로 가족들과 크고 작은 마찰이 여러 번 있었다는 진술이 있었다.

   지하 6층 시신은 세세(洗世)교 교주인 유진세로 살인, 특수상해, 횡령, 조세포탈 등으로 기소되었지만 1심에서 살인에 대해서는 무죄를 받았고 나머지 죄목만이 인정되어 벌금 10억 원과 3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었다. 검찰이 항소했지만 기각되었고 대법원에 상고까지 했으나 역시 기각되어 유진세에 대한 1심 선고형이 확정되었다. 유진세의 사건 기록에는 그가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신도들의 탄원서도 많이 있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세세교로 인해 피해입은 자들이 유진세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는 탄원서도 상당수 있었다.

   지하 7층 시신인 이진명은 새벽에 피해자들의 집에 침입하여 피해자들 소유의 보석 등을 강탈했고 그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집에 있던 골프채를 휘둘러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았다. 피해자들은 부부 사이였다. 이진명은 피해자들에게 금전 배상을 약속했다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특이한 점은 피해자 중 여성은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으나 그 여성의 남편만이 이진명을 엄벌해달라는 탄원서를 법원에 여러 차례 제출했었다는 것이었다. 지하 2층 강현중 사건과 똑같이 가해자 이진명과 피해자 여성 모두 세세교 신자였다. 피해자 여성은 세세교에서 가해자 이진명을 알게 되었음을 진술했다. 남편은 아내가 세세교에 나가는 것을 여러 번 말렸음에도 그녀가 아랑곳하지 않아 결국 이런 사단이 났다고 탄식했다.

하람과 유정은 신원이 확인된 사람들에 대해 실종신고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보았다. 지하 2층의 강현중, 지하 3층의 김재일, 지하 5층의 박보근, 지하 6층의 유진세, 지하 7층의 이진명 모두에 대해 실종신고가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특이한 점은 강현중, 박보근, 유진세, 이진명의 네 명에 대해 실종신고를 한 사람이 한 명이었고 가족이 아닌 직장 동료인 박덕순이라는 자가 신고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다는 것이었다. 이들에게 현재 연락하고 있는 가족이 없을 가능성이 높았다. 김재일을 실종신고한 사람은 그의 아내였다. 부검 의사 확인과 시신 인계를 위해 경찰에서는 네 명에 대해 신고한 박덕순에게 연락했었는데 고객님의 사정으로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메시지가 흘러나왔다. 두 형사는 최 팀장에게 지하 3층 시신을 뺀 지하 2, 5, 6, 7층 시신들 모두 세세교와 관련이 있음을 보고 했고 우선 세세교에 대해 수사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계속)

 

# '신곡 지옥 연옥 천국', 단테 알리기에리 장편서사시, 귀스타브 도레 그림, 김운찬 옮김 2022년 열린책들, 지옥 제6곡 서문, 27행, 54행에서 발췌

 

*저작권 등록을 마찬 저작물로, 저작자의 허락없는 사용을 금합니다.

 

 

728x90
반응형

'습작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국의 문(장편) 6  (0) 2024.10.19
천국의 문(장편) 5  (0) 2024.10.14
천국의 문(장편) 3  (0) 2024.10.04
천국의 문(장편) 2  (0) 2024.09.28
천국의 문(장편) 1  (0) 2024.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