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 소설

천국의 문(장편) 6

김지환 변호사 2024. 10. 19. 23:15

천국의 문 6

 

김지환

 

제2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

 

   아파트 단지에 가로등 하나만 밝히는 밤. 어두운 공기를 뚫고 사람이 차 위에 떨어지며 !’ 굉음을 냈다. 자동차 경보기가 애앵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지나가다 이를 보고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 베란다에 나와 무슨 일이냐고 웅성거리는 사람들, 집에서 사건 현장까지 나와 지켜보는 사람들, 자기 갈 길을 가다가 소리를 듣고 다시 뛰어오는 사람들이 모두 뒤섞여 소란이 벌어지고 있었다.

   경비원 세 명이 뛰어나와 두리번거리다 차의 지붕 위에 사람 하나가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몇 층에서 떨어졌는지는 몰라도 차의 지붕이 움푹 누그러지고 차의 앞 유리에 금들이 가 있었다. 차 지붕의 찌그러진 틈새로 붉은 피가 새어 나와 창문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를 본 경비원들은 잠시 주춤하다가 차 위로 뛰어올라 그자를 들고 땅바닥에 뉘었다.

   “아직 숨이 있어! 김씨가 얼른 심장충격기 가져와요. 119 부를께.”

   경비원 하나가 대답할 사이 없이 뛰어가고 나머지 한명은 119에 다급히 전화했다.

   “여기 주성시 일성아파트 110동 앞인데요 사람이 차 위에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어요. 아직 살아있는거 같아요! 빨리 와주세요!”

   사람들의 웅성거림 속에, 경찰차와 119 앰뷸런스의 사이렌이 멀리서부터 비집고 들어왔다.

   하람은 화장실 안에서 웅크린 채 숨을 죽이고 있었지만 몸이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언제부터였는지 수돗물을 최대한 세게 틀어놓아 세면대에는 하는 물 부딪히는 소리와 꿀렁꿀렁 배수구에 물 빠지는 소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화장실 밖에서는 베란다의 샷시문이 열려 있어 바람이 계속 들어오는 사이, 거실에는 옆구리에서 피를 쏟은 채로 하람의 엄마가 널브러져 있었고 피가 잔뜩 묻은 칼 옆에서 하람의 외할머니가 울면서 경찰과 통화하고 있었다.

   “우리 딸 죽어요. 제발 빨리 와주세요. 제발요, 빨리요!”

   경찰차와 구급차의 사이렌이 섞여 들어와 시끄러웠지만 하람에게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그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아빠는 분명 죽었겠지. 창밖으로 떨어졌으니. 이제 다 끝난 것일까. 엄마는, 엄마는 살아야 하는데.’

   하람의 아빠는 술을 안 먹은 날에는 폭행을 하지 않았지만, 술을 먹은 날에는 엄마뿐만 아니라 하람까지 때렸다. 하람은 그래도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는 아빠, 엄마와 함께 모두 행복했던 것 같았다. 그는 학교에서 임대아파트에 산다는 이유로 놀림을 줄곧 받았기 때문에 집이 가난한 것을 알았지만, 1년에 몇 번 아빠, 엄마와 놀이공원도 가고 가끔 주말에는 삼겹살도 구워 먹으면서 웃고 떠들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했다. 하지만 초등학교 6학년으로 올라갈 무렵 아빠가 음주운전자로부터 교통사고를 당해 허리를 크게 다친 뒤 일자리를 잃자 그는 거의 매일 술을 마셨고 그때부터 폭행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맞을 때마다 하람은 아빠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소리치며 대들었다. 그럴 때마다 아빠는 그 큰 눈으로 잠시 하람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손에 잡히는 대로 물건을 던졌다. 그때 그 눈, 아빠의 큰 눈은 무얼 말하고 있었던 걸까 싶었다.

   하람이 그렇게 웅크리고 있는 사이, 경찰들과 구급대원들이 들이닥쳤다. 화장실 문이 벌컥 열리고 들어온 경찰이 하람에게 괜찮다며 다독였지만 경찰은 그를 아직 일으키지는 않았다. 경찰은 거실에 쓰러져있는 하람의 엄마를 구급대원들이 수습했는지 뒤돌아 흘끗 보고는 그의 엄마가 들것에 실려 나가는 것을 확인한 뒤 아이를 일으켜 세웠다. 경찰이 하람을 데리고 나가려 하던 그때, 하람은 양발에 힘을 주고 나가지 않으려 버텼다.

   “, 엄마, 엄마 어딨어요. 우리 엄마 어딨어요?”

   하람은 울지 않았으나 공포에 질린 눈으로 경찰에게 물었다. 경찰은 하람에게 안전한 곳으로 모셨어. 괜찮아.’라고 말했다. 밖에서는 경찰들이 하람의 외할머니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지만 외할머니는 아무런 답을 하지 않은 채로 거실에서 앉아 하염없이 울고만 있었다. 하람의 어깨를 둘러주고 있던 경찰이 이제 나가자. 괜찮아,’라고 다독이자 하람은 아무것도 보지 않겠다는 듯 오직 현관문만 바라보고 뛰었다. 그때 아파트 밖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는지, 계단으로 내려갔는지 하람은 기억나지 않았다. 하람이 아파트 밖으로 나갔을 때에 이미 그의 아빠도 구급차에 실려 간 상태였고 사람들의 웅성거림만이 그의 귓속에서 벙벙거렸다. 경찰차에 타서도 그는 울지 않았다.

   그렇게 하람이 13살이었을 때, 그의 아빠와 엄마는 모두 사망했다. 사건은 남편이 아내를 칼로 살해한 뒤 베란다를 뛰어 내려 자살한 것으로 종결되었다. 하람은 외할머니의 집이 아닌 불교에서 운영하는 청소년 보호시설인 문수의 집으로 갔다. 그의 선택이었다. 외할머니가 폐지를 주우며 기초생활수급자로 근근이 살아가는 것을 알고 있었던 하람으로서는 외할머니에게 부담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주민센터에서 나온 사회복지사의 설명을 듣고 시설보호를 희망했다. 외할머니는 하람에게 계속 같이 가자고 했지만, 그는 집에 가기 싫다고, 시설로 가고 싶다고 둘러대었다.

 

   ‘문수의 집으로 간 하람은 열심히 공부하고 규율을 잘 지켰다. 시험을 볼 때마다 모든 과목에서 만점을 받거나 한두 문제 정도 틀리는 발군의 성적을 보여주었다. 학교에서 돌아와서는 대부분의 시간을 책상에서 공부하는 데에 보냈다. 10시에는 잠을 자야 했으나, 가끔씩 이 시간을 넘겨 책을 봐서 시설 담당 선생님에게 꾸중을 듣기도 했다. 상황을 보면 방황을 할 법한데 그러지 않고 하람이 늘 나이에 맞지 않게 의젓한 모습을 보이는 게 안쓰러웠던 시설장인 하중스님이 하람에게 물었다.

   “하람아 왜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니?”

   “저한테는 이 방법밖에 없어서요.”

   “그게 무슨 말이냐?”

   “아무것도 안 하면 자꾸 떠올라요. 그때가. 아빠가 너무 밉고 엄마도 보고 싶어요. 하지만 이제는 볼 수 없다는 거 알아요. 그래도 엄마 보고 싶어요. 그래서 공부라도 하면, 책이라도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잘 들지 않으니까.”

하람의 말을 듣고 있던 하중이 측은한 얼굴로 하람에게 다시 물었다.

   “그렇게 괴롭니?”

   “.”

   “그럴 수 있어. 아빠가 당연히 미울 거야. 나라도 그럴 것 같다. 그런데 말이다. 바람이 나에게 불어오는데 먼지를 털면 그 먼지가 어디로 날아갈까?”

   “저한테 먼지가 오겠죠.”

   “그렇지. 바람이 나에게 불어오는데 먼지를 털면 그 먼지들은 고스란히 나에게 다시 오겠지. 아버지가 너를 힘들게 했는데 이를 미움으로 대하면 그 미움은 너에게 돌아올 거야. 아버지가 너의 마음속에서 잊힐 수는 없겠지만 너무 거기에 집착하지는 않았으면 좋겠구나. 물론 그런 과거에 얽매여서 다른 나쁜 짓을 하지 않고 현재 네가 해야 하는 공부에 집중하는 태도는 좋은 거란다.”

   “스님. 어떻게 해도 그 기억이 잊히지 않으면 어떡하죠?”

   “사람이 나이 들면 어떻게 될까?”

   “죽겠죠.”

   “모든 사람은 결국 죽는다. 이 세상에 안 죽는 사람은 없어. 그 사람이 무슨 일을 하든, 무엇을 생각하든, 무슨 일을 겪고 있든,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결국 죽음을 향해 가는 거지. 영원한 것은 없단다. 미움과 기쁨, 집착 그 모두가 의미가 없는 거란다. 어느 한 곳에만 집착하지 않으면 너의 마음이 편안해질 거야.”

   “스님 저도 행복할 수 있을까요?”

   하중이 하람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죽음이 마지막이라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다. 잘 죽어서 극락왕생하려면 무엇보다 잘 살아야 해. 부처님이 말씀하신 행복은 세 가지란다. 하나는 지금 살고 있는 이번 생의 행복, 두 번째는 죽고 난 뒤의 행복, 세 번째는 영원한 행복. 부처님은 영원한 행복뿐만 아니라 지금의 행복도 외면하신 게 아니다. 사회의 모든 사람이 각자의 직업을 가지고 각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데 그러면서 누리는 건강한 행복도 중요해. 네가 다니는 학교에서 성적으로 경쟁하는 것처럼 세상에서는 경쟁을 할 수밖에 없다. 욕망이 없고 무엇이든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은 살아남기가 힘든 세상이지. 그래서 네가 현재 주어진 상황에서 성실하고 충실한 것이 중요하다. 네가 지금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는 것처럼. 하지만 너무 거기에 집착하지는 말라는 이야기다. 너무 집착해서 예를 들어 남의 시험지를 훔쳐보거나 교무실에서 정답지를 훔치거나 거짓말하거나 이미 나온 성적에 대해 성내지 말라는 의미란다. 이건 네가 커서 사회에 나가도 마찬가지이고. 그러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야. 너무 당연한 듯 보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를 지키지 못해 괴로워하지.”

   하람은 그렇게 중, 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으나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보는 대신 입산하여 승려가 되기로 결심했다. 학교 담임 선생이 문수의 집을 찾아와 시설장 면담까지 하면서 명문대에 갈 수 있는 성적이니 제발 말려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시설장인 하중스님도 승려는 녹록지 않은 길이라며 일반 대학을 진학할 것을 권했다. 특히 하중스님은 하람에게 불교 시설에서 자랐다고 승려가 되라는 의미가 아니었으며 혹시라도 이것이 하람에게 영향을 주었을까 정말 염려도 되고 미안하다고 했다. 하지만 완강한 건 하람 본인이었다.

   “공부를 열심히 하고 성적이 잘 나왔던 것은 제 나름의 수행 방법으로 그것을 택했기 때문일 뿐입니다. 이제는 진짜 공부와 수행을 해서 중생을 구제하는 길을 가고 싶습니다. 좋은 대학은 저 말고도 다른 아이들도 갈 테니까요.”

그렇게 하람은 19세에 입산하여 중앙승가대학교를 졸업하고, 군종장교로 군 제대한 뒤 구족계를 받고 승려가 되었다. 그는 강원도의 율제사라는 큰 사찰의 사무를 주재하는 원주(院主)를 보좌하는 별좌(別座)를 맡아, 승려가 된 뒤 처음 사찰에서 일을 시작했다.

 

# 박목월의 시 '나그네' 중 발췌

 

(계속)

 

*저작권등록을 마친 저작물입니다. 저작자의 허락없는 사용을 금합니다.

'습작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국의 문(장편) 5  (0) 2024.10.14
천국의 문(장편) 4  (0) 2024.10.09
천국의 문(장편) 3  (0) 2024.10.04
천국의 문(장편) 2  (0) 2024.09.28
천국의 문(장편) 1  (0) 2024.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