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문 8
김지환
하람과 유정이 사건 기록을 보며 강상국에게 무엇을 신문할지 한창 정리할 무렵, 오후 1시 30분, 그와의 약속 시간이 다가왔다. 유정이 흘끗 시계를 보다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구두 소리에 그의 시선이 쏠렸다. 170cm를 겨우 넘을 듯 보이는 작은 키였지만, 짙은 눈썹, 크지는 않으나 아몬드처럼 단단히 박힌 눈매, 검은 뿔테 안경 밑 미끄러지듯 내려오는 콧날 아래 다문 입술이 표정만으로도 누군가를 금방이라도 밀칠 듯 보였다. 그의 옆에는 경찰서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캐릭터로, 말끔한 정장에 손가방을 든, 딱 봐도 변호사로 보이는 남자 한 명이 그와 함께 하람과 유정의 자리로 걸어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강상국이라고 합니다. 고하람 형사님 맞으시죠?”
상국이 책상 앞 명패를 보며 말했다. 하람이 맞다고 하자 강상국이 명함을 내밀었다. 명함의 가운데에 ‘대표 강상국’이라는 직책 및 이름과 하단에 ‘e클린코퍼레이션 / 세세통상 / 세세엔터테인먼트’라는 작은 글씨가 있었고 그 바로 아래 지역번호가 들어간 유선 전화번호 하나가 인쇄되어 있었다. 강상국과 악수를 하면서 하람도 명함을 내밀었고 옆에 있는 유정을 소개하며 오늘 함께 조사를 진행할 수사관이라고 소개했다. 유정도 강상국과 악수를 했는데 강상국의 손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두 형사는 강상국의 옆 변호사와도 인사를 나눴다.
“여기 경찰서니까 듣는 사람 아무도 없고 보안은 철저하실 테니 무슨 사건인지부터 말씀을 들어볼까요? 혹시…저희 유진세 총재님을 발견한 건가요? 살아 계신 거죠?”
강상국이 책상 앞 의자에 앉으려 하자 하람이 제지했다.
“조사는 여기서 하지 않습니다. 오시죠.”
하람과 유정이 사건 기록과 USB를 들고 앞장섰다. 그들이 안내한 곳은 5평 남짓한 조사실이었다. 자리를 안내받은 강상국은 앉으며 다리를 넓게 벌렸다. 맞은 편의 하람의 시선이 상국의 다리로 향했다가 상국의 눈으로 갔다. 변호사도 그 옆에 앉아 익숙한 듯 다이어리와 펜을 꺼내 메모할 준비를 했다.
“일단 신분증부터 확인하겠습니다. 변호사님은 변호사 신분증 좀 주시죠.”
상국과 그의 변호인이 하람에게 신분증을 건넸다. 하람이 시선을 옮기며 그들의 얼굴과 신분증 사진을 비교해본 뒤 복사기로 갔다. 유정은 신문 사항들을 다시 훑어보며 약간의 수정을 하느라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복사기에서 돌아온 하람이 말했다.
“신분증 받으시구요. 세세교 유진세 총재와 세세교 신자들 시신 세 구가 발견되었습니다. 변사 사건입니다. 오늘은 이 사건에 관해 강상국 님을 참고인으로 조사하는 겁니다.”
유진세와 시신, 변사라는 말에 상국의 표정이 잠시 움찔거렸다. 하람이 강상국의 얼굴을 살피며 말을 이어갔다.
“참고인이긴 하지만 만일의 경우를 위해서 사전 고지를 하겠습니다. 일체의 진술을 하지 아니하거나 개개의 질문에 대해 진술을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진술을 하지 않더라도 불이익을 받지 않습니다. 진술을 거부할 권리를 포기하고 행한 진술은 법정에서 유죄의 증거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변호인을 참여하게 하는 등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해하셨죠?”
놀란 상국의 상체는 이미 의자 등받이에서 떨어져 하람을 향하고 있었다.
“언, 언제, 언제 발견되었습니까?”
“두 달 정도 됐습니다. 아까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진술 거부 가능하시다는 거, 변호인 조력 받을 수 있다는 거 이해하셨습니까?”
상국이 고개를 끄덕였고 입술로 오른손 검지를 물며 생각에 잠기더니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한동안 그렇게 있다가 그가 물었다. 양쪽 눈가가 촉촉한 듯 보였다.
“시신은 어디에 있습니까?”
“검사가 부검명령 내려서 부검했고 지금은 국과수에 임시안치 되어 있습니다.”
“저희가 실종신고를 했었습니다. 설마 했었는데.”
하람은 상국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입을 열다 말았다.
“시신은 인계받을 수 있는 겁니까?”
“예. 친분 관계 있는 분들이 모셔갈 수 있습니다.”
“아, 그나마 다행이네요.”
세세교 교주 유진세에게는 아내도 자식도 없었으며 친형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하지만 고령이었고 유진세의 시신 인수를 거부했다. 평소 아무런 교류가 없었다고 했다. 유진세와 함께 발견된 다른 3명 중 지하 2층의 강현중, 지하 5층의 박보근은 부모 없이 형제, 자매가 확인되었지만 이들도 시신 인수를 거부했다. 지하 7층 시신인 이진명의 시신만 겨우 찾은 유족에게 인계되었다.
“박덕순 씨가 누군지 아십니까? 유진세 씨나 다른 분들에 대해 이분이 혼자서 실종신고 하셨던데.”
“저희 세세통상 직원이었습니다. 3개월 전쯤에 퇴사했구요. 부검 결과를 알 수 있을까요?”
“아직 구체적으로는 말씀 못 드립니다. 범행에 대한 정보가 있기 때문에.”
부검 결과, 유진세와 세세교 관련자 3명뿐만 아니라 세세교와는 연관성을 찾을 수 없는 지하 3층 시신인 김재일, 신원미상의 나머지 2명 모두에게서 미국의 사형집행 방식에서 사용되는 주사 약물들이 검출되었다. 시신들에서 마취제인 티오펜탈 나트륨, 근골격계를 마비시키는 브롬화 판크로늄과 심장 박동을 정지시키는 염화칼륨이 검출되었고 이를 주사한 흔적과 전기 충격의 흔적도 확인되었다. 경찰은 누군가가 이들 7명을 잡아 전기 충격을 가해 정신을 잃게 한 뒤 위 약물들을 주사기로 주입하여 살해한 것으로 추정했다. 하람은 용의자인 강상국에게 경찰이 가진 패를 미리 보일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했다.
“박덕순 씨 연락이 안 되던데 퇴사 후 근황에 대해 혹시 알고 계신 것이 있습니까?”
“아뇨. 연락한 적 없습니다.”
“편의상 진술인으로 호칭하겠습니다. 진술인은 현재 무슨 일을 하고 있나요?”
“이클린코퍼레이션이라는 청소업체, 세세통상이라는 무역회사, 세세엔터테인먼트라는 연예기획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연락처는 아까 명함에 있는 그대로구요.”
“세세교 부총재이기도 하시죠?”
상국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뭐, 거기는 유진세 총재님이 하도 도와달라고 해서. 주업은 아닙니다.”
“종교가 업인가요?”
하람이 묻자 상국이 나긋한 목소리로 답했다.
“종교가 업이 아닐 이유가 또 뭐가 있겠습니까? 신부, 목사, 스님…다들 직업 아닙니까?”
“유진세 씨하고는 어떤 관계입니까?”
하람이 묻고 유정이 열심히 조서를 입력하고 있었다.
“총재님하고는 신학교 동기였습니다.”
“가톨릭이요? 개신교?”
“장로교요. 그런데 이분이 갑자기 신학교 3학년 때인가 관두고 스님된다고 절에 들어가더라고요.”
“그 뒤로는요?”
“뭐, 저는 졸업하고 선교사하다가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워서 알바식으로 청소일 하면서 조그맣게 제 사업 차렸습니다. 청소도 하고 세차도 하고. 열심히 해서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은 없는 정도가 되었구요. 그분하고는 통 연락이 안 되다가 졸업하고 10년 정도 지났나. 갑자기 연락이 왔어요. 대뜸 교회 하나 세울 건데 같이 일하자고. 그렇게 해서 같이 하게 되었죠.”
“교리는 유진세 씨가 만든 겁니까?”
“네. 저도 좀 도왔습니다.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국가에서 얼마든지 가능한 일 아니겠습니까.”
“어쨌거나 유진세 씨가 세세교 총재, 진술인이 부총재 직함으로 활동했던 것이 맞죠?”
“예.”
하람이 서류철에서 사진 하나를 꺼내 강상국의 앞으로 내밀었다.
“강현중 씨 사진입니다. 얼굴과 이름 아시겠습니까?”
사진을 손으로 짚지도 않고 팔짱을 낀 채로 유심히 보던 상국이 말했다.
“총재님을 옆에서 보좌하던 친구였습니다. 외부에 갈 때 경호도 맡구요.”
“대략적으로 어디서 살던 분인가요?”
“형사님들 찾아오셨던 저희 본부에서 살았죠.”
“이렇게 옆에서 보좌하거나 경호를 맡았던 분들이 총재님과 같이 살았다구요?”
“네. 저는 거기 답답해서 집을 따로 얻었고 출퇴근만 합니다. 총재님하고 총재님을 보좌하는 직원들은 거기 본부에서 삽니다.”
그렇게 하람이 지하 2층의 강현중, 지하 3층의 김재일, 지하 5층의 박보근, 지하 7층의 이진명의 사진을 강상국에게 보여주었고 그는 지하 3층의 김재일을 뺀 나머지 3명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한다고 했다. 강현중, 박보근, 이진명은 모두 유진세를 보좌하고 경호를 담당했던 이들이라 했다. 나이가 많은 음주운전치사범 김재일에 대해서는 처음 보는 얼굴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우리 내부적으로는 골치가 아팠죠. 셋 다 사고 치고 다녀서 수습하느라 애를 많이 먹었어요. 우리가 많은 오해도 받았구요.”
“사고는 유진세 총재가 더 치지 않았던가요? 그것 때문에 뉴스에도 많이 나왔잖아요.”
“거기에 대해서는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이미 법원 판결도 다 완료된 건이구요.”
“강현중, 박보근, 유진세, 이진명 이렇게 4명이 실종된 것은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넉 달 전인가 총재님이 인천과 수원에서 강연을 하셨고 강연이 끝난 후에는 머리 식히고 싶다며 강릉으로 여행을 다녀온다고 하셨습니다. 아까 그 친구들도 동행했었습니다. 그런데 돌아오시기로 한 날이 되어도 소식이 없었어요. 그래서 아까 그 박덕순이라는 직원을 시켜서 실종신고를 한 거죠.”
“혹시 누가 살해했는지 짚이는 분이 있습니까?”
“박기영이라고 저희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분이 있습니다. 안티 모임의 리더죠. 그분이 꾸민 일 같은데요.”
약 3시간에 걸쳐 조사를 이어갔으나 부총재인 강상국이 유진세와 그의 경호원들인 강현중, 박보근, 이진명을 살해했다는 뚜렷한 단서는 보이지 않았다. 하람은 조사가 거의 끝날 무렵 강상국이 세세교를 차지하기 위해 그들을 살해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던졌지만 강상국은 극구 부인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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