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 소설

천국의 문(장편) 5

김지환 변호사 2024. 10. 14.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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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문 5

 

김지환

 

   하람과 유정은 거리에서 헤매다 목적지에 겨우 도착했다. 가까이서 봐야 겨우 볼 수 있는 한국종교간판 하나가 건물의 정면도, 측면도 아닌 3층과 4층 모서리의 중간에 조그맣게 달려 있었기에 눈에 띄지 않았다. 손으로 밀면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한 구축 건물의 양옆에는 이미 철거한 건물들의 잔해가 쌓여 있었다.

   “안녕하세요. 한국종교 잡지 운영자 박철민 목사입니다. 여기 앉으시죠.”

   약속 시간이 늦을까 싶어 지하철역에서 건물까지 15분을 빠른 걸음으로 오고 4층을 걸어 올라왔기에 숨이 턱까지 차오른 하람과 유정이 헉헉대며 박철민 목사가 건넨 명함을 받았다. 그들도 주섬주섬 명함을 꺼내어 박 목사에게 건넸다.

   “여기 앉으시죠. 마실 것 좀 드릴까요? 믹스커피 아니면 주스 괜찮으세요?”

   “, 저는 물 부탁드립니다.”

   “저는 믹스커피 감사합니다.”

   하람은 물을, 유정은 믹스커피를 선택했고 박 목사가 안내한 소파에 앉았다. 엉덩이가 아래로 푹 꺼졌다. 음료를 기다리며 그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맞은편 책장으로 향했다. 신학원론, 영성신학입문, 한국교회사, 동양철학, 현대철학, 정토사항, 대승기신론 등 하람은 중앙승가대학교에서, 유정은 가톨릭 신학교에서 한 번씩 본 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김정규 경사님 친구시라고 말씀들었습니다.”

   유정이 커피를 건네받으며 말했다.

   “네 친구라기보단 제가 동생이에요. 워낙 격의 없고 좋은 분이라 저를 친구라고 소개하신 모양이네요. 10년 전인가어떤 사이비 교주한테 테러를 당했었는데 제 사건 담당 형사님이셨거든요. 그래서 알게 되었죠.”

   “그렇지 않아도 오늘도 유사 종교 사건이 있어서 여쭤보고 싶은 것들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하람이 물의 반 컵을 들이켠 후 말했다.

   “대충 말씀은 들었습니다. 세세교라구요.”

   “. 인터넷으로 찾았는데 찾기가 쉽지 않더군요. 오늘 대화 녹음해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목사님 말씀을 모두 기록하기가 어려워서 한자라도 빠뜨리지 않으려면 이렇게라도 필요할 거 같아서 그렇습니다. 원하지 않으시면 편하게 말씀주셔도 됩니다.”

   “아닙니다. 녹음하시죠.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람이 휴대폰 녹음 버튼을 누르며 다시 물었다.

   “세세교는 홈페이지가 없나요? 검색해도 없던데.”

   “세세교 홈페이지는 없지만 이게 있죠.”

   인터넷에서는 찾기 어려웠다는 하람의 말에 박 목사가 탁자에 놓인 노트북을 열어 검색어에 이클린코프라고 치자 청소회사 홈페이지가 화면에 떴다.

   “이클린코프. 이클린코퍼레이션의 약자죠. 세세교에서 운영하는 청소회사입니다. 전국에 35개의 가맹점 사무실이 있는데 가보면 겉으로는 청소회사가 맞죠. 실제로 청소 용역도 하고 수익도 괜찮습니다. 예상하시겠지만 세세교에서 앞에 자가 한자로 씻을 세()자이고 뒤에 자가 세상 세()자니까 세세교 슬로건이 세상을 깨끗이 닦는 자가 될지니입니다. 그래서 본인들 컨셉에 직관적으로 맞는 청소 사업을 하는데, 본질은 종교 활동의 거점입니다. 또 하나는 세세통상. 여기 뜨는 홈페이지 보시면 대구하고 어류들 수입하는 회사입니다. 정확히 이 양반들이 대구를 수입하는지, 밀수를 하는지, 뭐를 수입하는지는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마지막으로 세세엔터테인먼트. 연예기획사를 표방하고는 있는데 홈페이지를 보시면 전속 계약한 연예인들 사진이나 이름이 없어요. 이 무늬만 연예기획사가 젊은이들을 포섭하는 주요 통로 중에 하나입니다. 가끔씩 무슨 무슨 영화의 단역을 뽑는다는 공고를 내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지우기를 반복하죠.”

   “이래서 종교 자체 홈페이지가 없는 거군요. 본거지는 어딘가요?”

   “우조산이라고 경북에 조그만 산이 있는데 그게 세세교 2인자인 강상국의 소유로 등기되어 있습니다. , 교주 이름이 유진세라고 거기선 총재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2인자가 강상국이라고 부총재라고들 하죠. 암튼, 우조산에 성전을 지어놨는데 거기가 세세교 본부이고 경계가 삼엄해서 아무나 못 들어갑니다. 교인들이 모여 행사 같은 거 할 때 개신교 교단에서 몇 명씩 잠입해서 들어갔다 나오긴 합니다만 휴대폰, 사진기 등은 지참 금지라 최근 사진을 갖고 있는 사람을 찾기 어려울 겁니다. 들어갈 때 3시간 정도 들여 참석자들의 모든 소지품을 검사합니다.”

   “주요 교리가 뭔가요?”

   “불교와 기독교를 섞어 놨습니다. 예를 들어, 불교에서의 보생여래(寶生如來)는 자타의 평등을 깨달아 대자비심을 일으킨다는 의미인데 이것을 교묘하게 비틀어서 다른 사람의 재물이 잘못된 곳에 사용되는 게 예상되면 그 물건을 훔쳐도 된다는 내용으로 가르칩니다. 터놓고 말해서 절도해도 된다는 거죠. 그리고 티베트 불교에 포와(Phowa)’라는 개념이 있는데 죽음을 앞둔 사람이 영적 스승의 인도를 받아서 극락으로 가는 의식의 일종입니다. 이를 곡해해서 상대방의 업을 보고 환생하기에 좋은 때라면 살인해도 좋다고도 합니다. 사실상 살인을 정당화하는 셈입니다. 그래서 사건들이 뻥뻥 터질 만도 한데 이게 좀처럼 기사화되지도 않고 수면 위로 잘 떠오르지도 않습니다. 교리를 그렇게 설파하기는 하지만 극도로 조심하는 것 같기는 합니다. 사건을 잘 묻거나. 언론인들 포섭에도 상당히 능하죠. 그리고 특이한 교리가 하나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이게 핵심 교리입니다.”

   “뭐죠?”

   하람이 물었다.

   “그들은 조건부 종말론을 설파합니다.”

   “보통은 시한부 종말론 아닌가요?”

   유정이 반문했다.

   “그렇죠. 보통은 예를 들어 종말이 1999년에 온다, 2025년에 온다는 식으로 설정하고 신도들에게 그때에 반드시 당신들만 구원받는다고 말하죠. 그와 달리 세세교는 세상을 깨끗이 닦아서 새로운 세상을 이루지 않으면 종말이 온다는 조건부 종말론을 내세웁니다. 오히려 종말이 와서 구원을 받는 것 보다는 새로운 세상을 이룩해야 한다는 조건과 당위성을 부여하는 거죠. 이건 기존의 기독교 교리에 조금 더 가깝습니다. 마가복음 1332절부터 그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세세교는 여기서 깨어 있으라는 말씀을 교묘히 비틉니다. 세상을 닦으면서 준비하고 있으라는 거죠. 아무도 종말이 언제 올지 모르고 깨어 있지 않으면 그사이에 종말이 올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종말이 오긴 온다는 거네요.”

   “종말이 오면 그들이 말하는 새로운 세상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여부에 따라 구원이 결정된다고 합니다. 빌립보서 212절에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이 있는데 이 말씀을 근거로 그렇게 해석하는 거죠. 교인들이 교단의 지침을 복종할 수밖에 없도록 장치를 만든 겁니다.”

   “나름 그럴듯한데요.”

   유정이 말했다.

   “아직 조짐은 없지만새로운 세상을 이뤄야 한다는 게 체제 전복을 의미하는 걸 수도 있고, 들리는 소문에 사병단을 꾸리고 있다는 말도 있습니다. 교주를 경호하는 조직이 있는 건 이미 확인된 사실이구요.”

   “사병단이요?”

   유정이 반문하자 박 목사는 손사래를 쳤다.

   “물론 아직 확실한 정보는 없습니다. 워낙 폐쇄적이고 궁극적 교리가 그렇기 때문에 떠다니는 소문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세세교 안티 세력은 없나요? 예를 들면 피해자들 모임이라든지.”

   하람이 물었다.

   “세세교 피해자 카페가 있습니다.”

   박 목사가 몇 번 클릭하더니 세세교 피해자 모임이라는 카페 홈페이지가 떴다.

   “박기영이라는 40대 내과 의사가 이끄는 모임이죠. 8년 전에 미미하게 활동을 시작했다가 5년 전부터는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 사람 형이 세세교 때문에 자살을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최 목사와 세세교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뒤 하람과 유정은 사무실로 복귀하기 위해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유정이 말을 꺼냈다.

   “쉽지 않겠는데요.”

   “그죠? 법적 근거가 시원치 않으니. 딱히 증거도 없어 보이고.”

   “임의동행은 고사하고 입구 컷부터 당할 거 같은데.”

   “일단은 용의자부터 좁혀봅시다.”

   그렇게 그들은 용의자로 두 명을 추렸다. 세세교의 2인자라고 하는 강상국과 세세교 피해자 모임의 주도자인 박기영. 두 형사는 강상국이 세세교 총재이자 교주인 유진세를 제치고 본인이 세세교를 장악하기 위해 유진세를 제거했을 가능성과 함께 묻혀 있었던 세세교 신자들이 유진세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인물들이었을 가능성, 피해자인 박기영이 복수심에 유진세와 세세교 관련자들을 처단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들은 우선 강상국을 소환하여 조사하기로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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