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 소설

천국의 문(장편) 1

김지환 변호사 2024. 9. 23. 23:38

천국의 문 1

 

김지환

 

제1부 세상을 깨끗이 닦는 자가 될지니

 

   오늘도 국도 위에서는 차들이 달리기만 할 뿐, 누구도 도로 옆 표지판들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100m 앞 화장실 있는 편의점’, ‘200m 앞 주유소등 안내판들 사이로 별다를 게 없는 표지판 하나, ‘천국의 문.’ 누군가는 모텔 이름으로, 누군가는 카페 이름으로 이해할 법한 국도 옆 안내판. 하얀색 칠이 된 두 개의 나무 지지대에, 지상으로부터 1m 높이쯤 가로 220cm, 세로 130cm의 직사각형 나무판이 붙어 있었고, 나무판의 바탕은 모두 파란색으로, 판 전체에는 천국의 문이라는 궁서체의 하얀색 글씨가 자리 잡고 있었다. 국도의 한쪽에는 야산이 죽 이어져 있었고 맞은 편의 펼쳐있는 들판에 띄엄띄엄 인가 몇 채만 있을 뿐 사람이 거의 드나들 것 같지 않은 한적한 공간이었다. 이곳을 뒤흔든 건 야산과 이어진 호방산에서 발생한 산불이었다. 호방산 중턱에 자리한 집의 화목보일러 연통의 중간에서 새어 나온 불씨는 3월 초의 마른 나무들을 타고 순식간에 번졌다. 나무의 윗부분에 붙은 불에서 튕겨 나온 불씨들이 바람에 흩날렸고 2월 중순경에 눈이 온 뒤로 더 이상 눈이나 비가 오지 않았던 터라 휴지에 물이 스며들 듯 화마는 빠른 기세로 일대를 빨아들였다. 산불은 나흘 동안 이어졌다가 겨우 진압되었다.

   누구도 찾지 않던 천국의 문을 두드린 사람은 화재조사관이었다. ‘천국의 문안내판 근처 야산을 휩쓸고 간 등성이의 길목에서 화재조사관은 낙엽들 아래에 묻혀서 그동안 보이지 않던 철문을 발견했다. 낙엽과 나무들이 모두 타버렸으므로 이제는 멀리서 봐도 도드라져 보였다. 사각형 식빵의 가장자리만 남겨 놓은 형상의 사각 콘크리트 테두리가 땅에 얹혀 있는 듯했고, 커다랗고 쇠로 된 쌍여닫이문이 굳게 닫혀 그 테두리를 모두 덮고 있었다. 화재조사관 두 명이 자리를 훑고 지나가던 도중, 그중 한 명이 잠시 살펴보자고 했다.

   “이거 뭐지? 새로 설비한 보안시설인가?”

   “바쁜 데 그냥 갑시다. 산불하고도 아무런 관련 없어 보이는데. 발화 요인도 아니고.”

   조사관 한 명이 걸음을 멈추고 사각 콘크리트 테두리를 따라 눈으로 살피다가 자리에 앉아 손으로 테두리를 만져보았다. 3월 한낮의 햇살을 받아 콘크리트는 미지근했다.

   “이거 열어봅시다.”

   철문에는 아무런 잠금장치도 없어서 열면 열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개인 소유면 어떡하려고. 그냥 가자니까요.”

   열어보자고 했던 조사관이 무언가 아쉬운 듯 철문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경찰하고 도청 산림녹지과에 통지라도 해야겠어. 누가 알아. 산불하고도 관련이 있을지.”

   그는 휴대폰 사진을 여러 장 찍고 동료와 함께 자리를 떴다. 산불 현장 조사에서 소방서로 복귀한 그는 관할 경찰서와 도청 산림녹지과에 찍은 사진들을 보내고 그 자리에 보안 내지는 인가 시설이 있는지 문의했다. 해당 산지는 개인 소유였는데 시설에 관한 자료는 없다고 했다. 여전히 찜찜했다. 구조물 같은데 아무런 신고나 등록도 되어 있지 않다니. 경찰에 설명하니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관련된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의심스럽다는 이유만으로 사유지에 무단으로 드나들 수는 없다는 이유였다. 조사관이 잠금장치도 없었으므로 확인만 해달라고 했으나 경찰은 사건들로 일이 넘치는데 굳이 그런 것까지 해야 하냐는 속내를 드러냈고, 여유가 생기면 살펴보겠다는 형식적 답변을 내놓았다.

   조사관은 천국의 문일대의 조사를 이미 마쳤고 그 위 지구를 조사해야 했는데, 조사를 가는 길, 그곳에 잠시 들렀다. 같이 나간 다른 조사관에게 양해를 구하고 잠시 어디를 들렀다가 곧 따라가겠다고 했다.

   한낮임에도 아무도 지나가는 사람이 없었다. 하늘이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고요했다. 두어 마리의 새들이 후드득 지나가는 소리에 그는 깜짝 놀라 어깨를 움츠렸고, 움츠린 그의 어깨 위로 바람이 지나갔다. 봄바람이었지만 누군가 그의 어깨를 손길로 훑는 느낌이 들어 머리카락들이 쭈뼛 서버렸다. 소름이 끼쳤다. 그렇게 그는 움직임을 잠시 멈췄다가 다시 어깨를 슬며시 펴며 주위를 두리번 살폈다. 그러고는 과연 안에 무엇이 있을지 조금은 두려운 마음으로, 온 힘을 다해 그 문을 열어젖혔다.

 

*

 

   “이야, 종교대화합의 장이네.”

   정암경찰서장이 고하람 경위와 김유정 경장으로부터 부임신고를 받으며 한마디 했다. 서장실에서 서장이 올 때까지 대기하고 있던 두 사람은 처음 보았을 때 인사를 한 것 말고는 아무런 대화를 하지 않았었기에 서장이 언급한 종교대화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리둥절했다. 서장의 농담에 고 경위와 김 경장 모두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고 굳어있는 표정으로 서 있자 서장이 말했다.

   “, 두 사람은 서로 모르겠네. 고 경위?”

   “.”

   “자네 어디 출신이지?”

   “경찰대 법학과 졸업했습니다.”

   “아니. 그 전에. 뭐했어?”

   “불교 승려였습니다.”

   서장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고 경위가 불교 승려라고 하자 김유정의 눈이 커졌다.

   “고 경위는 몇 살이지?”

   “서른 다섯입니다?”

   “뭐라고?”

   “서른다섯

   하람이 서장의 눈치를 살피며 천천히 발음했다. 유정은 눈을 의심했다. 열 살은 족히 많아 보이는데. 유정은 하람에게 인사할 때에 새로 오신 경감님이십니까?’라고 물을뻔했었다. 서른 다섯이라고는 하나 40대는 되어 보이는 얼굴, 깡마른 체구에 길에서 지나가면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을 볼품 없어 보이는 남자. 딱 한 가지 특징이 있다면 그의 눈빛이었다. 유정은 그를 보자 그의 눈빛이 형형해서 밤길에도 고양이 마냥 눈에서 빛을 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봐 김 경장? 자네는 뭐 했었다고 했지? 성당 신부였다고 했나?”

   “아닙니다. 가톨릭 신학교 5학년 때 관뒀습니다.”

   “5학년? 신학교 4년제 아냐?”

   “4학년 신학 학사로 학부는 졸업했고 대학원 1학년을 편의상 5학년으로 부릅니다.”

   “어쨌거나 신부는 될뻔했던 거네.”

   “, 그렇습니다.”

   “신부하기에는 훤칠하니 잘생겼는데. 자네는 몇 살인가?”

   “서른, 하나, 입니다.”

   서장이 못 들은 척 반문을 할까 싶어 유정은 또박또박 발음했다. 서장은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연예인하지 뭐 하러 이런 험한 데를 와?”

   “

   예상치도 못한 서장의 말에 유정이 뭐라고 말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는 사이, 다시 서장이 말했다.

   “불교와 가톨릭의 만남, 아주 기대돼. 나이나 계급이나 고 경위가 위니까 김 경장은 고 경위 잘 모시고. 열심히들 해봐.”

   서장이 오른손 엄지와 검지로 턱을 만지면서 엷은 미소를 띄웠다. 고 경위와 김 경장이 목례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유정이 웃으며 하람에게 물었다.

   “경위님, 정말 스님이셨습니까?”

   “. 왜요? 스님이 경찰 된 게 신기해요?”

   유정이 그건 아니라고 손사래 치자 하람은 웃으며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고 유정도 더 말하지 않았다. 이내 복도를 걸어가는 그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뚜벅뚜벅, 아무도 없는 복도에 울리는 그들의 걸음 소리가 본인들에게도 낯설게 들렸다.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하람은 3학년으로 편입한 경찰대를 졸업하고 파출소와 경찰서 경제팀에서 3년간 순환보직을 마친 후 강력팀에 처음 발령받아 왔고, 유정도 순경으로 지구대에서 근무를 시작한 뒤 3년 차에 경장 진급 시험에 합격, 강력팀으로 처음 발령받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들에게 이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갈 기회도 있었다. 정암경찰서 강력팀에 전출이 2명 발생하여 팀장인 최형일 경감이 팀원을 구하기 위해 수사경과(搜査警科)를 가지고 있는 20여명의 경위와 경장급 경찰관들에게 전화를 돌렸지만, 대부분은 승진시험을 준비해야 한다는 둥 이런저런 이유로 거절했던 터였다. 한번은 너무 속이 탄 나머지 최형일 팀장이 전화기를 들고 욕을 했다. ‘, 이 새끼야. 강력팀 안 할 거면 수사경과는 왜 땄어!’ 그런데, 최형일 팀장의 전화를 받은 고하람 경위는 단번에 하겠다고 답했고, 김유정 경장은 생각해보겠다고 한 뒤 이틀 후 최 팀장에게 한번 해보고 싶다고 했었던 터였다.

   “어서들 와요.”

   강력팀 팀장 최형일 경감은 나긋한 목소리로 반갑게 두 사람을 맞이했다. 형일은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두 사람의 어깨를 손으로 감싸며 말했다.

   “여기도 사람들 사는 곳이니까 너무 얼 필요 없어. , 모두들 일어나 봐.”

   팀장의 말에 자리에 앉아 있던 팀원들이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새로 온 고하람 경위하고 김유정 경장이다. 다들 인사해.”

   “안녕하세요. 김정규 경사입니다. 경위님 환영합니다.”

   김정규 경사가 함박 웃음을 지으며 하람에게 악수를 청했고 하람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함께 악수했다.

   “우리 김 경장도 환영하고.”

   유정도 활짝 웃으며 김정규 경사와 악수했다.

   “이태식 경사입니다.”

   이태식 경사는 표정 없이 짤막한 자기소개와 함께 그들과 악수했다. 다른 팀원인 이정희 경장과 박형욱 순경도 간단히 인사하며 악수했다. 형욱은 쭈뼛거리면서도 막내라고 하며 잘 부탁드린다는 인사도 빼놓지 않았다.

   “두 사람 선뜻 응해줘서 고맙고. 두 사람 자리는 저기입니다.”

   하람과 유정이 자리에 앉자 팀장은 뿌듯한 듯 이제서야 자리가 꽉 차네. 아주 좋아.’라며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듯했다. 그러다 무언가 잊은 것을 떠올린 듯 팀장이 하람과 유정의 자리로 찾아왔다.

   “, 오늘 접수된 변사 사건이 있는데 나하고 같이 갑시다. 차 대기해놨으니까 지금 바로 가면 돼. 두 사람에게 맡길 생각이니까 가서 잘 보고. 오늘 접수된 건이라 기록도 없어서 일단 현장부터 보자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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