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 소설

내 인생의 꽃(단편)

김지환 변호사 2024. 9. 10. 22:43

내 인생의 꽃

 

김지환

 

   아내와 신혼여행 이후 31년 만에 처음 가는 여행길의 날씨가 순탄해서 다행이었다. 인터넷에서 제주도 날씨로 검색했다가 여행 첫날인 일요일의 날씨가 비 올 확률 40%’라고 해서 비가 온다는 건지, 안 온다는 건지 애매하던 터였다. 기상청 블로그를 찾아보니, 오늘의 강수확률이 50%라고 하면 오늘 비가 올 수도 있고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동안 이런 상태의 대기에서 비가 100번 중 50번 왔었던 것이라고 했다. 강수확률이 20%여도 비가 올 수도 있다는 것이었으므로, ‘비 올 확률 40%’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난감했다. 비가 와도 비행기만 뜨면 제주도야 가겠지만 마라도로 가는 배편이 날씨에 따라 결항할 수 있다고 하기에 상당히 신경 쓰였다. 어찌 되었든 제주도에 도착하니 약간 흐리기는 했지만 비가 내리지 않았고 예정대로 나와 아내는 마라도로 향했다.

   송악항에서 출발해 30분 정도 배를 타고 마라도 선착장에 내렸다. 살짝 배멀미를 했는데, 선착장에 내리고 보니 참고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방으로 트인 해안의 풍경이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푸른색의 바다, 멀리 보이는 섬들과 맞은편 제주도의 어귀, 낮게 깔린 흰 구름 무리를 보고 감탄하라고 누군가 작정하고 구성해 놓은 듯했다. 눈을 들면 바로 앞의 벽과 건물을 비롯한 각종 구조물, 사람들이 보이는 서울과는 다른 풍광. 고요하면서도 파도 소리와 사람들의 말소리, 웃음소리, 바다 내음이 뒤섞여 마음을 들뜨게 만들었다. 사람들의 무리를 따라 걷다가 짜장면 등을 파는 중국집을 여러 곳 거치게 되었는데, 우리 둘 다 배가 고프지는 않아 지나쳤다. 그렇게 20분 정도 걷다, 수평선과 망망대해를 앞에 두고 경치를 볼 수 있는 벤치들이 놓여 있는 곳에 아내와 자리를 잡았다. 나와 아내 모두 몇 분간 아무 말 없이 앞에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다가, 아내가 말을 건넸다.

   “10년 전쯤이라나. 원래 여기에 골프장에서 볼 수 있는 그 차, 뭐더라맞다, 그 카트도 운영했었대. 사람들이 성질도 급해. 이렇게 걸으면 좋은걸. 그거 다리 조금 불편한 거 못 참겠다고 카트를 타다니.”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오기 전에 좀 찾아봤어. 말로만 듣던 마라도에 간다니. 진짜 좋다. 누가 여기 공기에 뭐 타 넣었나 봐. 숨만 쉬어도 좋네. 천천히 바라보니까 하나씩 눈에 들어와. 별 볼 때도 그렇잖아. 밤하늘을 쳐다보면 주변의 빛 때문에 별이 보이지 않다가도 계속 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보이는 것처럼.”

   “이제는 우리한테 그런 여유가 생긴 걸까.”

   내 말에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나는 아내를 힐끗 바라봤다. 아내는 깊은 상념에 싸인 듯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갑자기 그렇게 병에 걸렸는데 무섭지 않아? 억울하지 않고?”

   “처음엔 무서웠지. 근데 은찬이도, 자기도 그렇게 떠나가니까 뭐랄까 포기나 좌절과는 조금 다른데, 사는 것에 그리 대단한 것도 집착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구. 팔자소관이라고 해야 하나. 암튼 그렇게 생각하니까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어. 억울한 마음도 없어.”

   나는 고개를 끄덕인 후 말했다.

   “우리 이사 가자.”

   “갑자기 여행 가자고 해놓고는 여행 오니까 이번에는 갑자기 이사야?”

   “실은 은찬이 만났어. 걔가 찾아온 건가? 암튼.”

   아내는 내 얼굴을 한동안 빤히 보다가 다시 바다를 쳐다보았다. 그러고서는 아무 말이 없었다. 몇 분 정도 지났을까.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래, 자기 찾아와서 뭐라고 하든?”

   “당신 치료할 때 옆에 있어 주고 당신하고 여행 가래. 그리고 이사 가래.”

   “그래서 여기로 온 거야? 우리 아들 효자네. 그래 가자. 이사. 다른 곳에 가면 다른 더 좋은 일이 생기겠지. 그런데 어디로 가나?”

   “좋은 데로.”

   아내의 하는 웃음에 내 마음속 짐이 조금은 덜어진 것 같았다. 그녀의 눈을 보았다. 눈가 주름이 더 도드라져 보였다.

   “우리 서로 고맙다, 미안하다, 왜 그랬냐, 뭐 이런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해. 나는 자기가 이렇게 돌아와 준 것만으로 그냥 좋아.”

   아내의 말에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저만치에 있던 파도가 나의 마음속에 조금씩 밀려 들어오고 있었다. 파도는 밀려 와 부서지지 않고 가슴 속에 차올랐다. 오른손을 뻗어 아내의 왼손을 잡았다. 아내의 손이 거칠었다. 거칠게 느껴지는 결과 결 사이에 그녀와 함께 끼워 놓은 그동안의 시간들이 한 겹씩 차곡히 들어가 있었다. 아내에게 손을 비비며 말했다.

   “다음번 항암 주사 맞을 때 같이 가.”

 

*

 

   그때가 내 인생의 꽃이었어. 이곳에서 너를 처음 만났을 때가.

   구치소에서 출소 후 1시간 30분 정도 지하철을 타고 양서역 4번 출구에 내려 양서산부인과에 들어갔다. 이곳은 로비가 넓고 대기 의자도 많았다. 나는 환자의 가족인 것처럼 햇볕이 드는 구석 자리에 자연스럽게 앉았다. 산부인과 옆에는 소아청소년과가 있었는데 아이들의 까르르 웃음소리가 마음을 포근히 덥혀주었고, 남편과 함께 온 듯 보이는 산모가 만족한 표정으로 진료실에서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이어서 진료실에서 나온 남자 의사가 화장실이 급한 듯 빠른 걸음으로 이동했다. 얼굴을 보니 기억났다. 원장 선생. 백발이 된 것을 빼고는 그 인상 그대로였다.

   “아빠, 여기는 왜 오셨어요? 구치소로 제가 마중 나간대도.”

   자리에 앉은 지 5분 정도 지나자 아들이 곁에 앉았다. 정은찬, 나의 아들. 머리는 가르마를 따라 단정했고 반달눈에 날렵한 콧날과 하얀 얼굴, 180센티미터 정도 되어 보이는 키, 남색 점퍼에 줄을 세운 베이지색 바지. 누가 봐도 호감형에 훤칠한 30대 청년. 나는 입가에 미소를 걸친 채로 아들을 바라보았다.

   “뭐 좋은 일이라고 마중까지. 여기 오니까 네 애미 생각도 나고 너 태어났을 때도 생각나고. 여긴 30년을 한참 지나왔는데도 아직 병원이 그대로 있었네. 원장도 이제는 머리가 하얗고. 암튼 다행이야.”

   “뭐가 다행이에요?”

   “여기 없어졌으면 오늘 못 왔을 거 아니냐?”

   아들은 무언가 말하려는 듯 머뭇거리다 물었다.

   “구치소에서는 지낼만 하셨어요?”

   “힘들긴 했는데 견딜만 했어. 처음 해봤네. 겨울에 찬물로 설거지하는 거. 근데 입소할 때 항문 검사하는 건 좀 치욕스럽더라. 낮에 눕기만 해도 교도관이 막 뭐라고도 하고. 너도 알겠지만 내가 낮잠이 좀 늘지 않았냐. 그래서 꾸벅 졸다가 에라 모르겠다하고 그냥 몇 번 누웠어. 그랬더니 징벌 스티커 세 번 주고 바로 징벌방으로 보내더라구. 그런데 난 징벌방이 더 편했어.”

   “징벌방이요?”

   “. 독방. 아무하고도 마주치지 않고 고요하게 또 다른 나를 대면하고 있는 느낌? 혼자 있다 보면 뭐 할까 싶었는데도 이 앞에 또 다른 내가 있다고 가정하고 그 사람과 대화하는 거지. 생각도 정리되고 머릿속도 맑아지는 느낌이 너무 좋았다.”

   “그래도 많이 심심하셨겠어요.”

   “괜찮아. 암튼 지낼만했다. 4개월 정도 짧게 있었던 것 같은데도 이렇게 나와 보니 사회 공기가 다르긴 다르네. 넌 뭐하고 지냈냐? 거긴 있을 만하고.”

   “. 편해요.”

   나도, 아들도 할 말이 없는 침묵이 몇 초 정도 지났다.

   “제가 태어났을 때 어땠어요? 아빠가 매번 말씀은 해주신 것 같은데 이상하게 기억이 잘 안 나네.”

   “네 엄마가 진통을 시작했는데 스무 시간이 지나도 애가 나오지 않는 거야. 그리고 네 엉덩이가 산도 위에 있어서 위험한 상황이었지. 그래서 의사가 제왕절개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 너무 놀라고 아무 생각도 없었어. 그냥 의사가 하자는 대로 모두 하시라고 했어. 그런데 수술 시작한다고 해놓고는 내가 간호사한테 시작했냐 물으면 아니래. 마취 의사를 기다려야 한다고. 그때 1분이 10분 같더만. 20? 30? 정돈가 그쯤 기다리니까 마취 의사가 헐레벌떡 뛰어오더라고. 길이 막혔다나.”

   “그 병원에는 마취과 의사 없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동네 산부인과에서 수술할 때에는 주변에 있는 마취과 의사를 따로 불러야 한다고 하더라구.”

   “그래서요?”

   “수술이 다 끝났다고 하는데 보니까 네가 울지를 않아. 너무 이상해서 의사한테 물었어. 왜 안 우냐고. 의사도 조금 기다려 보재. 엉덩이 몇 번 때리니까 그제야 울더라고. 가슴 쓸어내렸어. 그때.”

아들이 활짝 핀 배꽃처럼 배시시 웃었다. 그렇게 웃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돌잔치 때에는 제가 뭘 잡았다고 하셨죠?”

   “, 돌잡이. 실을 잡았지. 무병장수 한다고. 네 엄마가 그렇게 좋아하더라. 난 네가 돈을 잡았으면 했는데 엄마는 건강 앞에 돈이 무슨 소용이냐면서.”

   다시 몇 초간의 정적이 흘렀다. 아들이 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제가 아픈 건 언제 알게 된 거예요?”

   “네가 두 살 때인가 걷다가 자꾸 넘어져. 눈도 잘 맞추던 애가 눈길도 피하는 것 같고. 불러도 잘 쳐다보지도 않고. 느낌이 이상해서 병원에 갔지.”

   “그랬더니 뭐래요?”

   “의사가 처음에 보더니 정밀 검사해야 한다고 해서 1주일 병원에 입원시켜야 한다고 했지. 결국 뇌병변 장애에 발달지연, 그리고 자폐라고 하대.”

   나는 고개를 떨구었다. 그때부터 난 죄인이라고 생각했어. 네 엄마가 너를 임신하기 전에 조금이라도 내가 건강한 몸을 만들었어야 했는데, 일한다는 핑계로 술과 담배에 절어 내 몸을 혹사한 상태에서 너를 잉태시킨 죄. 너 임신했을 때 네 엄마의 지하철 출퇴근이 피곤한 일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돈이 부족해서 차를 사주지 못했던 죄. 남들은 태교 여행이다 뭐다 하는데 생계 때문에 너희 엄마를 출산할 때까지 일하게 한 죄. 부부싸움을 한 적이 있었는데 네 엄마에게 소리 지르고 화내서 여러 번 스트레스를 준 죄. 집에서 조금 더 가면 더 큰 산부인과가 있었지만 집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이 산부인과를 선택한 죄. 돈 때문에 너의 엄마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지 못했던 모든 순간들. 나의 모든 과거의 과오들이 오롯이 너에게 그런 벌을 내린 것 같았어. 너무 놀란 나와 아내가 의사에게 원인이 뭐냐고 물으니 딱히 잘라서 특정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래도 의사가 열거한 이유 중에 아직까지 머리에 박혀 있는 원인 하나는 있다. ‘출산 과정 중 호흡장애로 아기 뇌에 충분한 산소가 공급되지 못하는 등으로 출산 과정이 문제가 될 수는 있습니다만 출산한 지 시간이 오래 지나서 확인하기는 어렵겠네요.’

   “그때만큼은 전 죽고 싶지 않았어요.”

   아들의 말에 나는 얼굴을 두 손에 파묻었다. 이제는 모두 말라붙었다고 생각했는데 마음속 특정할 수 없는 곳의 미세한 균열을 따라 눈물이 배어 나왔다. 구치소에서 여러 사람과 같이 있는 혼거실에서는 울 수 없었다. 참고 싶었다. 30년 동안 돌봐온 장애 아들을 살해한 나쁜 놈. 내가 뉴스에 나온 그 나쁜 놈이다. 그들에게 동정을 바라지 않았다. 그래서 규정을 위반해서라도 징벌방인 독방에 갈 수밖에 없었다. 독방에 간 날, 들어가자마자 나는 마음 놓고 울었다. 가끔 교도관들이 와서 봤지만, 그들은 별말을 하지 않았다.

 

*

 

   30년 동안 지칠 대로 지쳐 있던 와중에 불을 당긴 것은 아내가 받은 난소암 3기 진단이었다. 아내는 갑자기 아랫배가 아프고 질에서 피가 난다고 했다. 동네 부인과 병원을 갔는데, 의사는 진료의뢰서를 써 주며 대학병원 급의 큰 병원으로 당장 가라 했고 대학병원에서 이런저런 검사 끝에 난소암 확진을 받았다. 의사로부터 암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아내는 잠시 움찔했지만, 집에 와서는 아들을 봐서라도 꼭 이겨내겠다고 다부지게 말했다. 오히려 무너진 것은 나였다. 아들을 잘 보살피면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 것이라 믿었지만 돌아온 것은 아내의 암 진단이었다. 애초부터 신을 믿지 않았으나 믿지 않던 신도 원망스러웠다. 걷잡을 수 없는 우울감이 지속되었고 그냥 이대로 생을 마감하고 싶었다.

   오후 8, 아들이 자는 것을 확인하고 불을 모두 끈 채 거실에 앉았다. 하염없이 베란다 밖 하늘을 보았다. 보름달이 밝았는데 구름이 몰려와 달을 가리고 있었다. 달빛이 구름 무리 안에서 산란 되어 울퉁불퉁 번지는 듯했다. 부서지는 빛을 손바닥으로 가렸다가 치우니 다시 그 빛이 보였다. 손바닥으로 가릴 때만 볼 수 없을 뿐 부서지는 빛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베란다 밖을 한참 바라보던 나는 눈을 잠시 감았다가 뜨고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에서는 칼을, 안방에서는 내 베개를 가져 나왔다. 아들의 방으로 향했다. 방의 창을 통해 들어온 바깥의 은은한 빛이 아들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베개를 가지고 아들에게 다가갔다. 순간, 아들의 눈이 나에게 향했고 그의 눈이 파르르 떨리는 듯했다. 나는 멈칫했다. 하지만 이내 시선을 옆으로 돌리고 아들의 얼굴을 베개에 힘껏 묻었다. 그러고는 그 옆에 누워 칼로 나의 왼쪽 손목을 그었다. 몸이 타오르는 듯 고통이 차오르다 곧 차가운 기운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눈을 감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러다 다시 눈을 뜬 곳은 병실이었다. 옆에서 아내가 계속 흐느끼고 있었고 나의 오른팔에는 링거줄이 여러 개 달려 있었다. 일터에서 돌아온 아내가 나와 아들을 발견해, 아들은 사망했지만 나는 가까스로 목숨을 구했다. 그렇게 병원에서 정신을 차린 후 아내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날 왜 살렸냐고 원망과 비난의 모진 말들을 쏟아내었다. 아내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울기만 했다.

   병원에서 퇴원한 직후 나는 살인죄 혐의로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아 구치소에 구속 수감되었고 기소되어 재판을 받게 되었다. 나는 재판 준비를 위해 구치소로 접견 온 국선변호인에게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하고 다시 찾아올 필요는 없으며 재판을 빨리 끝내 달라고 부탁했다. 법원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선고를 내렸다. 아내와 가족들의 탄원에 판사는 온정을 베풀었다. 공판 기간 내내 평정심을 유지했던 판사는 선고를 하며 북받친 듯 판결문을 읽다 잠시 숨을 고르기도 했다. 오늘이 선고일이었고 집행유예를 받은 나는, 구속되어 재판받는 4개월 동안 머물렀던 구치소에서 오후 2시경 출소했다.

 

   “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죠.”

   아들이 냉정하게 말했다. 네 말이 맞다. 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그런 아들의 냉랭한 반응을 들으니 신기하게 눈물이 뚝 그쳤다. 그런데 위로라도 바랐던 것일까. 상대방에게 내가 죽일 놈이야. 정말 미안해.’라고 엄살을 부리며 말하면서도 그로부터 그건 아닙니다내지는 괜찮아요와 같은 위안의 말을 은근히 듣고 싶었던 것일까.

   “정말 미안하다. 해서는 안 될 일을 했어. 내가.”

   다시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나는 고개를 들지 못한 채로 말했다.

   “용서해달라고 하지 않을게.”

   “사실 저도 살고 싶은 건 아니었어요. 30년 동안 움직일 수 없는 채로 누워있는 게 싫더라구요. 이렇게 살면 아무런 재미도, 의미도 없잖아요. 외국에서는 안락사라도 할 수 있다는데. 제가 몇 번 침대에서 굴러떨어진 적 있었죠?”

   3년 전부터였을까. 침대에 누워있던 아들이 침대 밖으로 떨어져 있는 경우가 몇 번 있었다. 처음에는 침대 기울기가 문제였나 싶었다. 평행계를 아들 침대에 놓고 유심히 봐도 침대의 수평에는 문제가 없었다. 뭐가 문제일까 싶어 방에서 나가 문을 살짝 열고 지켜보았다. 아들이 슬금슬금 꿈틀대기 시작했다. 움직임이 미세했으나 알 수 있었다. 너로서는 몸부림이란걸. 그것이었구나. 굳어있던 네 몸이 조금씩 움직이는 것이 반갑지만은 않았던 순간.

   “침대에서 떨어지면 죽을 것 같아서 그렇게 했어요. 한 번에 그렇게 될 수 없다면, 여러 번 하다 보면 몸속 어딘가는 고장 날 테니. 그렇게 자연스럽게 저 스스로 죽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되지 않더라구요. 어느 순간부터인가 아빠가 침대 옆에 매트리스를 까셨잖아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제가 태어난 건 제가 선택한 게 아니잖아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죽는 걸 다른 사람이 선택할 수는 없죠. 태어난 것은 제 선택이 아니지만, 죽음만큼은 제가 선택하고 싶었어요. 아빠가 30년 동안 희생해주신 거 감사해요. 하지만 아빠가 절 죽여주는 것을 원했던 것은 아니었어요. 그래서 그날 거부하고 싶었구요. 피하고 싶었어요. 아빠가 베개를 들고 온 날

   “, 그만. 제발 그만. 미안하다. 네 엄마도 그렇게 진단받고 나는 더 늙어가면서 힘도 부치고못난 선택을 해버렸어.”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지 못했다.

   “다시 집에 가고 싶지 않아. 이대로 집에 가면 너무 괴로울 것 같아. 그 모든 것들이 기억날 것 같아서. 그래서 생각했지. 아무리 봐도 그때, 너 낳을 때, 여기 원장이 대처를 잘못했어. 너를 엄마 뱃속에서 어떻게든 빨리 꺼냈어야 했는데. 마취 의사를 조금이라도 빨리 불렀어야지. 그 때문에 네가 호흡을 잘 못 해서 머리가 다친 것이지.”

   “아빠 그러지 마세요.”

   나는 품속에 있는 칼을 잡았다. 나무 재질의 손잡이가 제대로 마무리가 안 되었는지 모서리 부분에 거친 결이 있었는데 긴장한 탓에 연신 그 부분을 엄지손가락으로 비벼댔다. 엄지손가락을 움직여 문지를수록 신문지로 대충 둘러맨 칼날 부분에서 신문지의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여기 원장 죽이고 아예 감옥 가 버리면 적어도 그날의 기억에서 멀어질 수는 있겠지.”

   아들이 눈을 크게 뜨고는 나의 팔을 잡았다. 네가 놀라면 짓는 표정이 이것이구나.

   “지난번 그렇게 도망가려다가 결국 이렇게 다시 오셨는데 또 도망가려구요?”

   도망. 갈 수 있다면 가고 싶어. 숨을 수 있다면 어디로든 숨고 싶어.

   “엄마, 엄마는요. 엄마 혼자 남기시려구요?”

   아들의 눈빛이 단호했다. 네가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 가끔 궁금했었는데. 냉철한 거. 이건 네 엄마를 닯은 것 같구나. 아들은 뇌병변 장애 1급이었다. ‘독립적인 보행이 불가능하여 보행에 전적으로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 양쪽 팔의 마비로 이를 이용한 일상 생활 동작을 거의 할 수 없어 전적으로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 보행과 모든 일상 생활 동작의 수행에 전적으로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 처음 아들의 장애 등급을 받기 위해 심사신청서를 작성할 때에 확인한 법에 기술되어 있는 아들의 모습이었다. 아들에게는 나와 아내가 모두 필요했다. 그런데 아내는 나와 함께 아들을 돌보면서도 누군가는 반드시 돈을 벌여야 한다며 일을 했다.

   “엄마가 암 환자인데 정말 이대로 하셔야겠어요?”

   그때, 옆으로 누군가가 온 듯했다. 병원의 경비인지 직원인지 멀끔한 모습의 그가 나에게 물었다. 나는 품에서 손을 빼고는 점퍼의 지퍼를 살짝 올렸다.

   “저기 실례합니다만 아까부터 지켜봤는데 혼잣말을 하시고. 무슨 용무로 오신 거죠?”

   “여기 손주가 온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그는 알겠다고 하며 돌아섰는데 내 쪽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손주가 온다고 거짓말로 둘러대기는 했으나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 불편했다.

   “제가 말씀드리는 네 가지를 하시면 용서해드릴게요.”

   '용서'라는 아들의 말에 귀가 뜨였다.

   “우선 여기서 지금 그대로 나가세요. 아무것도 하지 마시구요. 나머지 세 가지는 이사 가시는 거, 어머니와 여행하시는 거, 그리고 엄마 치료하실 때에 엄마와 함께 계시는 거. 이거 모두 하시면 용서해드릴게요.”

   나는 대답을 하지 않고 안에 칼이 있어 뭉툭한 점퍼의 앞부분을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앞섶이 껄끄러웠다.

   “우리 언제 또 볼 수 있을까?”

   너하고 얼마나 대화하고 싶었는데. 항상 기도했어. 지금은 서로 눈을 마주 보며 대화가 불가능하더라도 다음 세상에서는 꼭 다시 만나 너와 눈을 맞추며 시답지 않은 대화일지라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오늘 이렇게 그 소원이 이뤄진 듯한데, 보니까 자꾸 욕심이 생기는구나. 그 사이, 그 남자가 다시 내 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선택해야 했다. 감행할 것인가. 아들의 말대로 아내에게 가야 할 것인가. 이대로 있으면 들킬 것이 분명했다. 또각거리는 그의 발소리, 그 소리가 조금 전 불같이 내 마음속에 달아올랐던 살의를 지그시 눌러 끄는 듯했다. 아들의 제안이 불타는 나의 마음에 이불을 던져 덮었다면 저 남자는 마지막 불씨라도 끄려는 것처럼 자근자근 그 이불을 밟고 있었다. 그 남자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휴대폰을 보는 척하며 결국 밖으로 나왔다. 병원을 빠져나와 5분 정도 걷다가 뒤를 바라보았다. 아들은 없다. 답을 듣고 싶었는데. 언제쯤 또 볼 수 있을까. 한번 해 볼게. 언제든 다시 나타나주렴. 엊그제 꿈속에서 구치소에 마중 나오겠다고 한 것처럼. 오늘 이렇게 내 옆에 와준 것처럼. 따뜻한 봄바람이 불자 벚꽃들에서 꽃비가 후드득 내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들이 제시한 용서의 첫 번째 조건을 완수했다. 집에 도착할 무렵 아내가 휴대폰 문자를 보냈다.

   ‘아주버님한테 오전에 소식 들었어. 병원이야. 오늘 항암 주사 맞는 날이라 4시간 정도 걸려. 식탁에 반찬 올려놨고 가스레인지에 찌개 올려놨어.’

   아내는 내가 구치소에 구속 수감 되어 재판을 받는 4개월 동안 수술을 했고 지금은 항암치료를 받고 있었다. 내가 없는 동안 아내의 오빠와 동생들이 많은 도움을 주고 있었다. 현관의 도어락 번호를 누르려다 멈칫했다. 막상 오기는 왔는데 들어가면 그날의 기억이 되살아날 것만 같아 망설였다. 나는 도어락으로 가져간 손가락을 거두고 대문 옆에 있는 2층으로 오르는 계단에 앉아 난간에 머리를 기댔다. 구축 빌라 계단의 난간이 삐걱댔다. 삐걱대는 소리에 옆집 개가 짖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나는 혹시라도 옆집 사람들과 마주칠까 서둘러 일어나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냉큼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 안에 들어서자 부대찌개 냄새가 났다. 방금 끓이고 나간 듯 냄새와 함께 남아 있는 화기에 마음이 뜨끔했다. 출소하고 온다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을 해놓은 모양이었다. 아들의 방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침대, 가래 흡인기 등 일상 의료 기구들, 각종 약들이 빼곡히 있던 자리가 모두 치워져 있었다. 텅 빈 방이 차분히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아찔했다. 만일 아까 산부인과 병원에서 아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대로 감행했다면. 아들은 이를 모두 알고 만류했던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싱크대로 가, 품 안에 있던 칼을 꺼내 성기게 엮여 있던 신문지를 모두 벗기고 수돗물에 씻은 뒤 보관대에 끼워 놓았다. 그리고 그릇에 찌개를 담아 식탁으로 가져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밥과 함께 늦은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늦은 점심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있을 무렵 아내가 집에 들어왔다. 설거지를 마친 후 식탁에 앉아 나는 믹스커피를, 그녀는 물을 마시며 그간 밀린 이야기를 시작했다.

   “마지막 재판 받을 때보다 살이 빠졌네.”

   “군대처럼 규칙적인 생활하고 삼시세끼 건강식으로 먹으니 살이 빠지네. 이참에 운동으로 이 체중 계속 유지하는 게 좋겠어. 수술할 때 옆에 있어 줘야 했는데 미안해.”

   아내는 대답하지 않는 대신 입을 삐죽 내밀었다. 내가 계속 말했다.

   “나 많이 밉지? 병원에서는 아무 말 안 하다가 당신이 구치소에 면회왔던 날, 그렇게 말한 거틀린 거 없어.”

   내가 병원에서 퇴원해 구속되어 구치소에 수감 되기까지 나와 아내는 사건에 대해서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그랬던 아내가 구치소에 면회와서는, 내가 처음 병원에서 깨어났을 때 아내에게 모진 말을 퍼부었던 것처럼 아내가 나에게 분노와 원통의 말들을 늘어놓았었다. 아내가 말했다.

   “처음에는 자기가 미웠어. 은찬이한테 그렇게 한 거, 그리고 내가 이렇게 있는데도 나를 두고 도망가려고 했던 거. 이기적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자기랑 4개월 동안 떨어져서 생각하다 보니 한편으로는 이해도 되었어. 얼마나 힘들면 그랬을까. 나한테 말이라도 해주지. 그동안 우리 서로에게 힘들다는 말 한 적 없잖아.”

   나는 입을 열 수 없었다. 커피가 식었는지 한숨에 들이켜도 뜨겁지 않았다.

   “치료는 받을만해?”

   “주사 맞으면 삼, 사일은 힘이 없는데 며칠 지나면 다시 회복돼서 괜찮아.”

   “속이 메슥거리거나 부작용 같은 건 없어?”

   “약간 울렁거리는데 참을만해. 근데 손발이 좀 저리네. 의사 설명으로는 항암제가 말초 신경을 손상시킨다는데, 어쩔 수 없대.”

   “이제 항암 몇 번 남았지?”

   “3주 뒤에 더 맞아야 하고. 총 두 번 남았어.”

   “그럼 다음 주 정도면 몸 좀 회복하겠지? 다음 항암 전에 우리 여행 좀 다녀오자.”

   “뜬금없이 무슨 여행? 자기는 이렇게 늘 갑작스러운 면이 있어.”

   “그냥 뭐, 우리 여행 다녀온 지도 꽤 되었잖아. 신혼여행 다녀온 후로는 처음일 거야.”

   “근데 말하는 게 꼭 무슨 밀린 숙제하는 것처럼 말하네.”

   “오래된 생각이었어. 숙제라면 숙제겠네.”

   “그래. 날 어디로 모셔주시려고?”

   “어디 가고 싶었던 곳 있어?”

   “그러면, 제주도에 마라도로 갑시다. 예전에 다녔던 공장에 오 여사 알지? 오 여사가 작년 여름 휴가를 거기로 다녀왔다는데 자랑을 얼마나 하던지. 정말 좋다고 몇 번이나 말하더라고.”

   “비행기표 좀 검색해보고.”

   휴대폰에서 비행기표를 검색하고 있는 나의 맞은편에서 아내가 머리를 숙여 내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아유, 거꾸로 보니까 잘 안 보이네.”

   그녀가 자연스럽게 나의 옆으로 와 엉덩이로 슬쩍 밀었다. 나는 안쪽 의자로 자리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이번에는 옆에서 내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그러자 앉은키가 작은 그녀의 뒷머리가 눈길에 들어왔다. 이제는 환갑을 바라보는 아내의 머리카락. 검은 머리가 정말 파뿌리가 되어 버렸다. 하얗게 세어버린 그녀의 머리카락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오늘따라 유난히 하얗게 보였다. 그러고 보니 나도 그녀도 염색이란 걸 해 본 적이 없었다.

   “이 정도면 싼데.”

   그녀의 머리를 보며 내가 손을 놓고 있자, 그녀가 나 대신 내 휴대폰 화면을 손가락으로 휘저으며 보다가 말했다. 다시 화면으로 눈길을 돌렸다. 아내의 말대로 4월이니 비수기인 데다 일요일에는 비행기가 더 쌌다. 그렇게 돌아오는 일요일에 우리는 제주도로 향했다.

 

*

 

   제주도에서 돌아온 후 아내와 함께 저녁을 먹고 TV를 보는데, 번지점프하는 장면이 나왔다. 보기만 해도 아찔했다. 내가 저기를 어떻게 뛰어내리냐.’라고 하자, 아내는 못할 것도 없지.’라고 응수했다. 나는 아내의 얼굴을 보았고 아내는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그러더니 그녀는 불쑥 내일 당장 가자고 했다. 내가 힘도 없는 암 환자가 무슨 번지점프냐고 역정을 냈더니, 아내가 말했다.

   “누가 내가 한대? 자기 하는 거 옆에서 보고 싶어서 그렇지?”

   “? 아휴. 못해. 국민학교 3학년 때 청룡열차 탔다가 기절했다고 내가 예전에 말 안 했던가?”

   “나 대신 한번 시원하게 뛰는 거 보고 싶은데.”

   아내가 한 마디 툭 던지더니 세탁기에서 수건들을 꺼내 가져왔고 하나씩 개기 시작했다. 아내가 수건을 집어 들자 포근한 향기가 다가왔다. 나도 거들기 위해 하나씩 집어서 접었는데 눈길을 TV에 고정했다. TV에서는 이제 막 번지 점프를 끝낸 한 젊은이가 잔뜩 상기된 얼굴로 리포터와 인터뷰를 했다

   - 아까 보니까 올라가셨다가 포기했는데 결국 뛰셨네요.

   - , 하하하.

   - 겁날 거 같은데 왜 다시 뛰셨어요?

   - 여자친구가 같이 따라왔는데 못한다고 하기가 좀 창피하고. 그리고 환불이 안 된대요. 여기까지 온 거 아깝잖아요. 그래서 뛰었어요.

   그때 아내가 수건을 개는 거야, TV를 보는 거야?’라며 수건 하나를 나에게 집어 던졌다. 나는 아내가 던지는 수건을 냉큼받아 개면서 말을 건넸다.

   “내일 한번 가볼까?”

   아내가 내 안색을 살피더니 말했다.

   “괜찮겠어? 우리 놀이공원 가본 적도 없잖아. 내가 말 꺼내기는 했는데, 막상 자기가 간다고 하니 조금 염려도 되네.”

   “한 번, 해 볼까?”

   다음 날, 나는 아내와 함께 차를 몰아 강원도 철원으로 향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한탄강 태봉대교에 있는 번지점프대가 우리나라 최초로 다리에 만든 것이라는데, 서울하고도 가까웠다. 도착해 매표소에서 표를 사기 전, 나는 혹시 나이 제한이 있는지 물었다. 제한이 없다는 말을 듣는다면 눈 감고 확 뛰어 버릴 것이고, 내가 62세이므로 60세 이상은 뛸 수 없다는 말을 듣는다면 짐짓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최소한 아내에게 면은 세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직원은 60대라도 허리에 묶고 뛰는 허리점프는 가능하다고 했다.

   그렇게 번지점프대에 섰다. 잠시 밑으로 시선을 돌렸는데 다리 저 아래에서 안개처럼 피어오른 염라대왕이 어서 오라는 손짓을 하고 있었다. 오감이 닫혀버리고 심장 소리만 들리기 시작했다. 눈을 질끈 감았다. 심호흡을 하는 데도 나의 가슴을 한번 움켜쥔 공포감은 좀처럼 붙잡은 먹잇감을 놓지 않았다. 여기를 왜 오겠다고 했을까. 후회막심했다. 누군가가 말려줬으면 싶었다. 눈치 없는 안전요원은 바람 한 점 없는 더없이 좋은 날씨라며 이제 숫자를 세겠다고 했다. 아내는 아래에서 기다리면서 내가 뛰어내리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겠다고 했다. 그녀는 세상 즐거운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을 것이다.

   심호흡을 하고 뛰려다가 안 되겠다 싶어 뒤로 물러났다. 안전요원이 한마디 했다.

   “못 뛰시면 환불 안 되는 거 안내 받으셨죠?”

   문득, 어제 본 TV 인터뷰가 떠올랐다. 내 머릿속에서 그 젊은이가 말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환불받을 수도 없는 거 아깝잖아요.’

   나는 심호흡을 한 뒤 한 발 내딛었고 숫자도 세지 않은 채로 그냥 내친김에 뛰어버렸다. 갑자기 허공에 내몰렸다는 느낌에 공포감이 가슴을 쥐어짜는 듯했다. 이쯤이면 끝이겠지 했는데 계속 내려가고 있었고, 눈을 질끈 감았는데 생각보다 내려가는 시간이 길어서 다시 눈을 떴더니 강물이 시야에 빨려들어 오고 있었다. 그렇게 떨어지다 갑자기 하늘로 몸이 하고 솟았다. 떨어지고 오르기를 몇 번 반복하자 이제는 마음이 안정되고 수면에 닿을 듯 매달린 상태가 되었다. 그때, 보트를 타고 온 직원이 나를 잡아 주면서 자연스럽게 보트에 타게 되었고 그가 번지점프 줄을 풀었다. 줄이 풀리며 나의 다리도 풀려 자리에 주저앉았는데 뿌듯한 기운이 몰려왔다. 저만치서 아내가 손을 흔드는 모습이 보였고, 나도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뛰어 보니까 어때? 잘하던데.”

   보트에서 막 내린 나에게 아내가 물었다.

   “어휴, 심장 떨려서. 그런데 뛰고 나니까 보람차네.”

   내가 상기된 얼굴로 아내에게 답했다. 그러자 아내가 말했다.

   “정말 잘했어. 수고했어.”

   나는 무심코 아내를 안았다. 밀어낼 것 같던 아내가 나의 품에 얼굴을 묻었는데 그녀의 어깨가 들썩이는 게 잠시 보였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의 머리를, 어깨를, 등을 쓰다듬었다. 그녀가 한동안 그렇게 있다가 내 가슴에서 얼굴을 떼고 손으로 눈가를 훔친 후 말했다.

   “배고파.”

   주차장으로 가는 길, 아내가 나의 손을 잡았다. 아내의 손을 그렇게 꼭 잡고 나는 걸음 속도를 그녀의 보폭에 맞춰 조금 늦췄다. 아내와 함께 천천히 걷는 발걸음이 어제보다는 더 가벼운 것 같았다.

 

*

 

   집을 비워주기로 약속한 날이 다가왔다. 이사 가기 전날, 잠자리에 누웠다가 아들이 다시 나타나지 않을까 싶어 머리가 맑아졌다. 잠이 오지 않았다. 아들은 출소한 날 찾아온 이후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아내는 곤히 자고 있고 나 혼자 자리를 뒤척이다 이불을 걷지도 않은 채로 일어나 앉았다. 사방이 고요하고 어두운 가운데에 나는 눈을 감았다. 너와의 약속을 잘 지키고 있어. 어쩌면 그날 보았던 것은 아들이 아니라 나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날 마주했던 사람이, 아니면 환영이, 아들인 척하는 나였을지도. 구치소 독방에서처럼 마주하고 있던 나 자신이었을 수도. 아들로부터 듣고 싶은 이야기를 내가 나에게 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아들이 나에게 속삭이는 듯했다. 죽으면 끝인 줄 알았는데 여기서 당신들과 함께 있다고. 그러니 굳이 여기로 도망 올 필요는 없다고. 도망 와도 끝이 아니니까. 끝인 줄 알고 도망 왔는데 그게 끝이 아니라면 얼마나 허탈하겠냐고. 그러니 엄마와 오늘을 살라고. 아들의 목소리인 듯, 내 목소리인 듯 맴돌다 사라졌다.

 

 

*저작권 등록이 된 습작 소설입니다. 저작자의 허락 없는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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