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 소설

불타는 비석(단편)

김지환 변호사 2024. 9. 8.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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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비석

 

김지환 

 

   담에 붙은 불이 기름을 타고 마당까지 번지고 있었다. 기름기 섞인 탄내가 연기와 함께 밤공기를 가득 채웠다. 불타는 담 아래 주춧돌들 사이, 끼어 있는 비석의 반들반들한 표면에 불꽃이 반사되어 번쩍거렸다. 불은 이내 마당에 있는 감나무로 옮겨붙었고 바싹 마른 가을 나무껍질이 타닥거리면서 불똥을 토하며 떨어져 나갔다. 나무에 붙은 불이 번져 그 옆에 묶여 있는 개가 화기에 깽깽거리며 몸부림쳤다. 마을 사람들 모두 집안에 꼭꼭 숨은 듯 불났다고 외치는 사람 하나 없다. 지나가던 한두 명 정도 번져가는 불길을 가만히 바라보다 자리를 떴을 뿐. 이제 불은 집을 파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

 

   “정말 덥네. 근데 나는 그 옆 동네가 더 마음에 들어.”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문대면서 주완이 영신에게 말을 건넸다. 그는 더 마음에 드는 이유를 설명하려다가 수건의 양쪽을 잡고 격하게 머리를 터는 바람에 입을 다물었다. 영신은 소파에 잠이 든 채로 누워있는 아들 지훈의 가슴을 토닥이고 있었고, TV 뉴스에서는 며칠 뒤 찾아올 태풍을 예고하고 있었다.

   “거기가 산에 더 가까워서 조용하고 공기도 더 좋을 거 같아 보이기는 하는데 일본인들 공동묘지 위에 만든 동네라던데?”

   “공동묘지?”

   주완이 머리를 털다 말고 되물었다.

   “어. 그 동네에 육이오 때 피난민들이 들이닥쳐서 집 지을 곳이 없었대. 결국 집터로 잡은 곳이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공동묘지였던 거지.”

   주완은 다시 수건으로 머리를 말리면서 말했다.

   “공동묘지였으면 어때? 칠십 년도 더 지났으니 새삼스럽게. 그나저나 내려가는 게 맞는가 싶다. 내년에 승진급 대상인데 이렇게 육아휴직 일 년 쓰는 게 조금 아깝긴 하네.”

   아들 지훈의 아토피가 심해졌다. 여러 병원에 다니며 이런저런 치료를 받았는데 차도가 없었다. 아이가 크면서 나아진다고는 하는데, 밤마다 가려움으로 괴로워하는 아이를 보면 조바심이 앞섰다. 5살 아들의 얼굴은 문지르지 않아도 윤기를 자랑하는 단감과 같았지만 오른쪽 볼과 이마는 그 껍질이 뜯긴 듯 환부가 드러나 있었다. 그래서 주완과 주완의 아내 영신은 1년 정도, 지금 살고 있는 서울에서 벗어나 시골 생활을 해보면 어떨지 의논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하려면 주완이 육아휴직 1년을 쓸 수밖에 없는데 아들을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승진 심사를 앞둔 것이 마음에 걸렸다. 회사에서 육아휴직을 쓰는 것에 대해 눈치를 주는 것은 아니었다. 직원 수만 1만 명이니 육아휴직 대체자를 내부에서 해결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기에 권장까지는 아니어도 요건만 충족되면 육아 휴직하는 것에 대해 문제 삼지는 않았다. 하지만 직원의 승진을 결정하는 것은 회사 마음이니 승진 심사를 앞두고 있는 주완으로서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주완은 아들을 위해 1년을 쓰기로 했다. 회사에서는 그의 육아휴직을 승인했고, 그와 아내 영신은 귀촌 체험 프로그램을 했던 곳인 각포리의 옆 동네, 연심리에서 1년간 머물기로 했다.

 

   “마을 좀 특이하죠? 손님들 지금 묘지 밟고 앉아 계신 겁니다. 혹시 TV에서 보셨을 수도 있는데 이 마을에 원래 일본인 공동묘지가 있었어요.”

   연심리의 이장이 주완과 영신에게 마을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들은 잘 부탁드린다며 인사하기 위해 수박 한 덩이를 들고 이장에게 찾아왔던 터였다. 그들이 마을에 처음 왔을 때, 묘지의 비석 등이 계단, 담장, 옹벽, 주춧돌 등으로 사용된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어 이채로운 풍경을 자아냈다.

   “그리고 우리 마을은 마을발전기금 같은 거 받지 않아요.”

   이장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주완과 영신은 이장을 만나기 전 머리가 하얗게 센 나이 많은 이장을 예상했는데, 그는 의외로 40대로 보이는 비교적 젊은 사람이었다. 안경을 낀 인상도 시골 사람치고는 이지적으로 보였고 크고 둥그런 눈매와 차분한 중저음의 목소리가 주완과 영신에게 신뢰감을 주고 있었다. 주완은 말도 통하겠다 싶었는데 마을발전기금을 받지 않는다고 하니 마음이 놓였다. 아무리 1년 동안만 머문다고 해도 여기저기서 요즘 시골 텃세가 만만치 않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대신 마을 공통으로 써야 할 돈은 필요하니까 한 가구당 매월 삼만 원씩 걷습니다.”

   주완과 영신은 그 정도야 문제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부탁드릴 게 있는데요.”

   그들의 시선이 이장에게 쏠렸다.

   “개 한 마리를 집에서 키워주셨으면 합니다.”

   영신이 반문했다.

   “강아지는 왜요? 강아지를 꼭 키워야 하나요?”

   “지자체에서 관광상품 만들려고 하는데 마을마다 특색있는 거 하나씩 하는 게 좋겠다고 해서요. 우리 마을은 애견마을을 밀려고 합니다. 일종의 마을 전통이기도 하구요. 개가 악귀를 쫓아주고 액운을 막아준다고 하니. 뭐, 개에 거부감 있으시면 안 키우셔도 괜찮은데 그렇지 않으면 가급적 따라 주셨으면 합니다. 견종은 상관없어요. 그냥 개면 됩니다.”

주완과 영신이 딱히 개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으므로 키운 적이 없었다. 당장 어디서 개를 데려와야 하는 것인지, 돈을 주고 사 와야 하는 것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주완이 이장에게 물었다.

   “강아지를 사 와야 하는 건가요? 여기 마을 사람들에게 특별히 개를 공급해주거나 그런 업자가 있습니까?”

   이장이 손사래를 쳤다.

   “그런 거 없어요. 인터넷 보고 유기견 입양을 하시든, 애견센터 아무 곳에서 돈을 주고 사 오시든 그건 알아서 하시면 됩니다.”

   그렇게 주완과 영신은 이장과 몇 마디를 나눈 뒤 인사를 하고 이장의 집을 나섰다. 이장의 집을 나설 때, 좀 전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마당을 지키고 있던 개 한 마리가 눈에 띄었다. 10kg 이상은 돼 보였고 앞다리에 울룩불룩한 근육이 드러나 있는 개였다. 영신이 개에게 다가가자 지린내가 훅 들어왔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개는 영신에게 눈의 흰자와 이빨을 보이며 귀를 세웠고 꼬리를 위로 바짝 올렸다. 이내 으르렁거리더니 날뛰면서 마구 짖었고 목줄이 팽팽해지며 목줄을 묶어 놓은 땅에 박혀있는 핀이 뽑힐 것 같이 들썩거렸다. 컹컹대는 개 짖는 소리, 핀과 개 목줄의 금속 이음새가 부딪히는 찰랑거리는 소리, 한여름의 매미 우는 소리가 어우러져 영신의 머릿속을 헤집었다. 놀란 영신은 더 이상 다가가지 못하고 슬슬 뒷걸음질 치다 돌부리에 걸려 뒤로 자빠졌다. 영신의 이마에 땀이 배어 나왔다. 이를 지켜보던 주완이 영신의 손을 낚아채어 이장의 집을 총총히 벗어났다.

 

   주완은 아들의 주치의로부터 아토피 환자가 있으면 집 안에서만큼은 개를 키우지 않는 것이 좋다는 조언을 들었다. 고심 끝에,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마을 전체가 하는 일이라는 이장의 요청을 묵살할 수는 없어서 집 안이 아닌 마당에서 개를 키우기로 했다. 그런데 결정을 하니 어디에서 어떻게 입양할 것인지 막막했다. 주완은 영신과 함께 노트북을 켜고 검색을 시작했다. 그들이 정암군에 살고 있었으므로 포털사이트에 ‘정암군 유기견 입양’이라는 검색어를 입력하자 정암군청 산하 ‘정암군 동물복지지원센터’ 홈페이지가 화면에 떴다. 홈페이지에는 입양을 기다리는 유기견·묘들과 입양 절차, 입양 후기, 입양에 관한 온라인 교육 등 정보가 그득했다. 이장의 권유로 개를 키우게 되었지만 막상 홈페이지에 ‘새로운 가족이 되어 주세요’라는 문구와 함께 유기견의 프로필들이 나열되어 있는 것을 보니 그들은 정말 새로운 가족을 맞이하는 것처럼 설레었다. 영신은 강아지 사진들을 보며 ‘와, 귀엽다.’를 연발했고, 개를 키워본 적 없는 주완도 그냥 ‘그 개가 그 개일 것’이라 생각했다가 사진을 보니 귀여워 보이는 강아지들이 제법 있었다.

   “어느 강아지가 마음에 들어?”

   주완이 묻자 영신은 ‘와니’라는 이름의 7.5kg 점박이 믹스견을 지목했다. 사진 속 ‘와니’는 귀를 쫑긋 세우고 웃고 있었다.

   “다른 강아지들보다 얘가 제일 눈에 밟히네.”

   ‘와니’라는 강아지에 대해서는 다른 아이들보다 더 긴 설명문이 붙어 있었다. 두 차례나 파양되었으며 유기되어 구조단체가 강아지를 구출했고 구출 당시 상당히 마른 상태였다고 했다. 처음 구출했을 때 만해도 사람을 잘 따랐지만 보호소에서 지내면서 마음을 닫아 상당히 예민해져 있는 상태로, 과거에 입양되었을 당시 귀 절제 후 귀를 세우는 ‘단이(斷耳)’ 수술이라는 미용 수술을 받았던 상태였으면서도 곳곳에 피부병, 영양 결핍, 심장사상충 감염, 슬개골 탈구 등 기본적인 관리조차 받은 적 없는, 상처 많은 아이라고 했다. 주완은 아내에게 말했다.

   “순간적인 동정심일 수도 있으니까 상담도 해보고 다시 생각해보자.”

   그들은 사이트에서 안내하는 대로 온라인 반려동물 입양 교육을 수강했고 입양 상담을 이틀 뒤로 예약한 후 센터를 방문했다. 주완은 센터 직원의 설명을 차분히 들었지만 영신은 강아지를 볼 생각에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이어서 직원의 안내에 따라 ‘와니’를 만났다. 주완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멀뚱히 바라보는 도중에 영신이 손등을 ‘와니’에게 내밀었다. 강아지는 그녀가 내민 손등에 몇 번 킁킁대다가 뒤를 돌아서 접견실의 구석으로 가 앉아 주완과 영신을 빤히 바라보았다.

   “다른 애들은 사람들 보면 놀아달라, 간식 달라 요청하면서 난리인데 얘는 꼭 저렇게 구석에서 쳐다만 봐요.”

주완과 영신도 녀석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이전의 주인들을 찾기라도 하는 걸까. 아니면 정을 줘봐야 당신들은 뻔하다고 무언의 비난이라도 보내고 있는 걸까. 녀석은 이제 시선까지 거두고 턱을 바닥에 괸 채로 눈만 껌벅이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 보여드릴까요?”

   직원의 말에 주완이 대뜸 ‘아니요’라고 답했고, 영신은 ‘이틀 뒤에 와서 와니 꼭 한 번 더 볼래요.’라고 말했다.

   “아무리 봐도 와니가 좋아. 동정이건 뭐건 자꾸 생각나서 안 되겠어.”

   센터를 나오는 길, 영신의 말에 주완도 동감했다.

   그렇게 그들은 두 번 더 ‘와니’를 만난 뒤 녀석을 입양하기로 했다. 영신이 주변의 애견인들에게 개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묻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속설 하나를 알게 되었는데 개의 이름을 음식 이름으로 지으면 오래 산다고 했다. 그래서 ‘와니’의 이름은 ‘호두’가 되었다. 이왕 키우는 거 개집도 싸지 않은 것으로 골랐고 마당에서 목줄을 길게 하되 아들 지훈이 개에게 다가가지 않도록 훈육했다. 동물병원에서 검사도 하고 예방 접종도 했다.

   호두가 집에 온 첫째 날에는 경계를 늦추지 않았고 처음 센터에서 보았을 때처럼 개집의 구석에서 가만히 엎드려 있었다. 그러다 하루 이틀 정도 지나자 주완 부부가 밥이나 물, 간식 등을 주기 위해 다가오면 일어나 그들의 냄새를 맡고 꼬리를 흔들며 알은 척을 했다. 그렇게 호두는 그들에게 천천히 마음을 열다가 집에 온 지 5일 정도 뒤부터는 본인의 집인 것을 알았는지 주완과 영신이 다가가자 배를 뒤집고 만져달라는 몸짓을 하거나 이들이 외출을 하고 돌아오면 자리에서 방방 뛰면서 반갑게 맞아주기 시작했다. 호두가 산책을 좋아해서 하루에 한 번 이상은 주완과 영신이 각자 또는 함께 호두를 데리고 산책을 했고 녀석은 나갈 때마다 주완이나 영신이 잘 따라오는지 확인하다가도 근처에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고 길가에 피어있는 꽃과 잡초들의 냄새도 맡는 등 분주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다른 개를 만나기라도 하면 곧바로 주완과 영신에게 달려오는 등 겁도 많았다. 어떤 날에는 동네 고양이와 맞닥뜨린 적이 있었는데, 호두가 고양이에게 슬슬 다가가다 고양이의 앞발에 얼굴을 맞자 주완과 영신의 뒤에 숨기도 했고, 비 오는 날 천둥이 강렬히 쳤는데 그 소리가 무서운지 계속 끙끙거려서 영신이 마당으로 나가 녀석을 쓰다듬어 주기도 했다.

   하루는 아들 지훈이 집 앞에서 놀다가 영신이 집 안에 두고 온 휴대폰을 찾으러 잠시 들어간 사이 사라진 일이 있었다. 영신의 친구가 휴대폰 문자를 보내왔는데 반가운 마음에 집 안에서 10분 정도 무심코 전화 통화를 한 것이 화근이었다. 지훈이 사라진 것을 발견한 영신이 깜짝 놀라 ‘지훈아! 지훈아!’하며 찾으러 뛰어가려는 찰나 호두가 난리를 치며 짖기 시작했다. 대문이 열린 채로 있었는데 지훈이 어디로 갔는지 호두가 보기라도 한 것일까 싶었다. 영신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호두의 줄을 풀었고 줄이 풀리자마자 호두가 집 밖으로 달음질을 시작했다. 영신도 호두를 따라 달렸지만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몇 분 정도 지났을까. 저만치서 호두가 짖는 소리가 들려 영신은 그 방향으로 달려갔다. 도랑에 빠진 지훈이 울고 있었고 그 앞을 호두가 맴돌며 계속 짖고 있었다. 천만다행이었다. 주완과 영신은 호두를 새로운 가족으로 맞아들인 것에 감사했다.

 

   그렇게 호두가 주완과 영신의 집에 온 지 한 달이 지났을 무렵, 누군가 초인종을 눌렀다.

   “저, 옆집인데요.”

   50대 후반이나 60대 초반 정도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의 목소리. 영신이 뛰어나갔다.

   “아. 네. 안녕하세요.”

   영신이 대문을 열며 반갑게 맞이했다. 그녀는 옆집에 사는 은숙이었다. 반달눈에 두툼한 코가 푸근한 인상을 풍겼고, 시골 할머니치고는 큰 키에 다부져 보였다. 은숙의 왼손에는 상추, 양상추, 열무가 한 봉지에 가득 들려 있었는데, 풋풋한 흙냄새에 윤기 나는 잎사귀들이 싱싱해 보였다.

   “이거 우리 밭에서 수확한 거에요. 한번 드셔보세요.”

   영신은 연신 감사하다며 허리를 굽혔다. 은숙은 영신에게 봉지를 건네며 마당을 죽 훑어보았다.

   “개 키우시네요. 어머, 건강해 보여요.”

   “예. 며칠 안 됐어요. 마을에서 다들 강아지 키우시나 봐요.”

   “그렇죠. 죄다 개 키우긴 하죠.”

   “이렇게 선물도 주시고. 잠시 들어오셔서 차 한잔 드시고 가세요.”

   “아니에요. 밭에 물 주러 나가는 참이었어요.”

   “그럼 나중에 꼭 식사 대접 한번 할게요. 그땐 시간 내주셔야 해요. 감사합니다.”

   “그래요 꼭 한번 초대해주세요.”

   집에 들어 온 영신이 은숙으로부터 받은 채소를 거실에 놓으면서 말했다.

   “이거 옆집 아주머니가 갖다주셨어. 그런데 보통 남의 집 강아지를 보면 귀엽다고 하거나 예쁘다고 하거나, 아니면 이름 물어보거나 하지 않나?”

   “왜? 옆집 아주머니가 뭐라고 했어?”

   “아니, 마당에서 호두 보더니 갑자기 건강해 보인대.”

   “건강해 보인다니 다행이지. 좋은 거 아냐?”

   영신은 그런가 싶다가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틀 뒤, 영신은 저녁에 옆집의 은숙을 초대했다. 은숙에게 대접하기 위해 주완과 영신은 전날부터 군내 대형 마트에 들러 불고기를 할 쇠고기, 버섯, 두부와 나물거리들, 수박 등을 잔뜩 샀다. 영신은 불고기야 여러 번 해봤지만 고춧잎, 시금치 등 여러 나물을 직접 해본 적은 없어서 휴대폰으로 레시피를 보면서 따라해 가며 저녁 준비를 겨우 마칠 수 있었다. 팔보채는 직접 하기 어려워 중국집에서 포장한 것을 사 왔다. 이것저것 준비한다고 했는데 막상 차려보니 가짓수가 많아 보이지 않아 영신은 염려했고, 주완은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토닥였다. 주완과 영신도 오랜만에 차린 거한 한 상에서 피어오르는 음식 냄새에 마음이 들떴다.

   “아유, 얼마 만에 받아보는 진수성찬인지 모르겠네.”

   상을 본 은숙은 감탄했다.

   “차린 게 몇 가지 없네요. 약소해요. 지난번 야채들은 너무 잘 먹었어요.”

   영신의 말에 주완도 거들었다.

   “정말 잘 먹었습니다.”

   “아니에요. 늘 혼자 있다 보니 매일 먹는 게 간단했는데 오늘은 포식하겠네요. 이렇게 사람들하고 모여 앉아서 식사한 것도 오랜만이고.”

   그렇게 그들은 마루에 놓은 식탁에 둘러앉아 저녁 식사를 시작했다.

   “아이가 몇 살이에요? 아들이 엄마 똑 닮아서 예쁘네.”

   아들 지훈이 오른손 손바닥을 쫙 펴 보이며 ‘다섯살’ 이라고 답했다.

   “똑소리나네, 하하.”

   은숙의 칭찬을 들은 지훈이 밥 한술 크게 떠 입에 넣었고 옆에서 주완이 불고기를 조금 떼어내 한 젓가락 지훈의 입에 넣어주었다.

   “서울에서는 왜 왔어요?”

   “아이가 아토피 때문에 아파서…”

   영신이 말하는 도중 은숙이 끼어들었다.

   “아, 볼하고 이마에 좀 있네.”

   주완과 영신은 동시에 ‘네’하고 답했다.

   “서울에서 회사 다니다가 휴직하고 1년 정도 맑은 공기 좀 쐬려고 내려왔어요. 이렇게 하면 좀 나을까 싶어서요.”

   주완이 답하자 은숙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가 공기가 정말 좋죠. 제 아들이 29살인데 대장암에 걸려서 지금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에 있거든요.”

   순간 주완과 영신이 ‘아…’하는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는 젓가락질을 잠시 멈추었다. 옆에서 지훈이 밥을 먹는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우, 안 그러셔도 돼. 이젠 좀 적응됐어요. 암튼 그 얘기 하려고 그랬던 건 아니고 자주 서울에 다녀오는데 여기 공기가 다르긴 해요. 딱 마을에만 들어서면 머리가 맑아져.”

   주완과 영신이 고개를 끄덕였고 영신은 ‘맞아요. 그런 것 같아요.’라며 추임새를 넣었다.

   “젊은 새댁이 나물도 잘하네.”

   은숙이 냉이 무침을 씹으며 말했다.

   “요새는 인터넷이 잘 돼 있어서 보면서 금방 따라 할 수 있어요.”

   “맞아, 우리 때랑은 많이 다르더라구.”

   “잘 부탁드립니다. 저희가 서울에서만 살아서 서투릅니다.”

   “그럼요. 이웃 좋은 게 뭐야. 궁금한 거 있으면 많이 물어봐요. 필요한 거 있으면 편하게 말하고.”

   주완의 부탁에 은숙이 선선히 답했다. 주완과 영신은 한결 마음이 놓였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과일을 먹으며 차를 마신 뒤, 은숙은 너무 오래 있었다며 서둘러 나가려고 했다. 주완 부부가 조금 더 있다 가셔도 된다고 붙잡았지만 은숙은 주책이라며 이제는 가야 할 시간이라고 했다. 주완 부부와 은숙이 마당으로 나왔는데 호두가 꼬리를 흔들며 만져달라는 듯 그들에게 다가오려고 했다. 은숙이 호두에게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고 콧등을 오른손 엄지손가락으로 쓸어올렸다. 호두는 시원하다는 듯 가만히 있었고 혀를 내밀어 씩씩거렸다. 그런데 영신이 느끼기에 은숙의 표정이 귀여운 강아지를 보는 그것이 아닌듯했다. 군대를 보내는 아들을 보는 표정이라고 해야 할까. 영신은 아직 아들을 군대에 보내려면 멀었지만, 지훈을 보낸다면 그를 바라보는 표정이 딱 그럴 것 같았다. 은숙은 그렇게 호두의 머리와 얼굴을 어루만져주다가 호두의 등, 옆구리, 배와 엉덩이로 손길을 옮겨 호두의 온몸을 쓰다듬었다. 그렇게 호두를 만지고 난 뒤, 그녀는 무언가를 완성하고 난 듯한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호두로부터 손길을 거두고 한동안 호두를 쳐다보았다. 그러다 이제는 무표정이었다. 생각에 잠긴 듯도 했다가, 몇 분 정도 흘렀을까. 그녀가 화들짝 놀라, 서 있게 해서 미안하다며 빠른 걸음으로 대문을 향했다.

 

   호두가 사라졌다.

   녀석이 주완과 영신의 집에 온 지 두 달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주완이 호두의 아침밥을 주기 위해 마당에 나왔을 때 끊겨 있는 목줄이 남아 있어 누군가 훔쳐 갔음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주완이 놀라 집으로 뛰어가 아내에게 호두 못 봤냐며 물었더니 아내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어젯밤에 자기 전에도 호두를 분명히 확인했던 그들이었다. 그들은 마을에 원래 도둑들이 있었는지, 새로 발생한 일인지 궁금했고, 혹시라도 호두를 발견하면 알려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서둘러 이장 집을 방문했다.

   이장은 짐짓 놀란 표정으로 이런 일은 처음이고 마을은 원래부터 아무런 일 없이 평화로운 곳이라 했다.

   “혹시 저희 강아지 보면 말씀 좀 부탁드립니다. 기회 되시면 마을 사람들에게도 전달 부탁드리구요.”

   주완의 부탁에 이장은 알겠다고 했다. 그렇게 주완 부부가 인사를 하고 나갈 무렵 이장이 그들을 붙잡았다.

   “아, 이거 말씀드려야 했는데 깜빡했네요. 내일 모레 마을 어귀에 있는 비석 앞에서 굿을 할 예정입니다. 매년 9월 초에 하는 행사에요. 거부감 있으시면 안 오셔도 되고 괜찮으시면 한번 들르셔도 됩니다.”

   “비석이요?”

   “유일하게 집터로 삼지 않은 일본인 무당의 무덤에 있는 비석이죠. 마을 사람들은 그 무덤이 영험하다고 믿고 있어요. 실제로 이곳은 전쟁도 피했고 태풍도 대부분 비껴가서 피해 입은 적도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해온 마을 행사죠. 앞으로도 잘 보내게 해달라는.”

 

   그렇게 주완은 마을 어귀에 있는 비석 앞에서 벌어진 굿판을 보러 왔다. 어린 지훈에게는 굿을 보여 주고 싶지는 않았기에 영신과 아들은 집에 남았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에 흙내음이 올라오는 밤 8시, 비석 앞에 넓게 드리워진 천막 아래에 나이 많은 사람들은 돗자리를 깔고 앉아 있었고 젊은 사람들은 천막 밖에서 우산을 쓰고 바라보고 있었다. 애매하게 천막의 처마 바로 아래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얼굴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연신 손으로 훔쳐내면서도 바로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느라 우산을 쓰지 않았다. 북, 꽹과리, 장구, 태평소와 방울 소리가, 내리는 빗줄기에 떠나지 못하고 갇혀 주변을 맴돌며 사람들의 표정을 모두 휘감아 앞에 있는 만신에게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굿판이 벌어지고 있는 곳으로부터 약 700m 정도 떨어진 공터에서는 연심리의 옆 각포리에 있는 개신교 교회의 목사와 신도 30여 명이 모여 확성기로 찬송가를 틀고 통성 기도를 하며 ‘사탄들아 물러가라’, ‘우상숭배하면 지옥간다’와 같은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2년 전, 각포리에 개척 교회가 들어섰다고 하는데, 작년에 굿을 하는 곳으로 교회 신도들이 몰려와 몸싸움까지 벌어지는 충돌이 발생했고 올해에는 경찰의 중재로 멀리 떨어져서 기도회를 열었다고 했다. 교회 신도들의 집회 주변에는 경찰차와 경찰 10명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들을 향해 한 어르신이 소리치자 굿판에 있던 마을 사람들이 ‘와’하며 박수를 쳤다.

   “우상숭배는 누가 하고 있는데!”

   찬송가와 무악(巫樂)이 어우러지는 진기한 풍경. 주완은 흥미로웠다. 그가 재미있어하며 줄의 맨 뒤편에서 우산을 받쳐 들고 서 있었는데, 바로 옆에 있던 옆집 아주머니, 은숙이 주완에게 굿을 처음 보냐고 물었다.

   “실제로는 처음 봐요.”

   “여기에 황해도 출신이 많았어요. 이게 황해도 굿이에요.”

   무당의 앞에 있는 크고 붉은 고무대야에는 그을려 익은 듯한 고기들이 담겨 있었는데 열 바퀴 정도 빙글빙글 돌다 멈춘 무당이 손에 들고 있던 삼지창으로 고기를 푹 찔렀다. 그러고는 자신의 앞에 있던 칼을 들어 세워진 날에 혀를 쓱쓱 문지르기 시작했다. 주완은 순간 눈을 질끈 감은 채로 고개를 돌렸다.

   “저게 무슨 고기에요? 돼지인 것 같기도 하고. 다른 작은 짐승 머리도 있는 것 같네요.”

   주완이 은숙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녀가 주완의 얼굴을 살피고는 말했다.

   “개고기. 여기 묻혀 있는 일본 무당이 개고기를 그렇게 좋아했다고 그러더라고.”

   주완이 깜짝 놀라 은숙에게 되물었다.

   “저 개고기…어디서 난 겁니까?”

   무당이 칼을 들어 입에 다시 넣고는 칼날을 입 안에서 이리저리 굴리다 갑자기 고무대야로 다가가 그 칼로 고기들을 마구 찔렀다. 그리고 고기의 일부를 잘라 본인의 입에 물고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기 시작했다. 비릿한 고기 익은 냄새가 굿상에 오른 전과 나물들의 기름내, 사람들의 눅진한 땀 냄새와 함께 주완의 코에 풍겨와, 더욱 격렬하게 울려 퍼지는 무악과 함께 주완의 머리를 뒤흔들었다.

   “몰라요. 이장하고 동네 청년들이 하는 거니까.”

   은숙은 주완의 얼굴을 보지 않은 채로 답했다. 주완의 가슴이 마구 뛰며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는 이장을 찾아 나섰다. 이장은 동네 노인들 사이에 앉아 있었고, 사람들을 헤치며 앞으로 간 주완은 이장에게 잠시 이야기하자며 불러내었다.

   “저 고기가 개고기라는데 맞습니까? 우리 집에 있던 강아지 맞죠?”

   이장의 안경알에 반사된 가로등 불빛이 그의 눈빛을 가렸다.

   “일 년에 한 번, 마을에서 가장 안 좋은 일이 있는 집이 다른 한 집의 개를 고릅니다. 그 개를 잡아 고기를 굿상에 올리는 거죠. 여기 묻힌 무당에게 비는 겁니다. 그 집이 잘되게, 마을 모두도 잘되게 해달라고. 말씀 들으셨을지 모르겠는데 최주완 선생댁 옆집 아주머니 아들이 얼마 전에 암에 걸려서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 입원 중입니다. 그러니 너그럽게…”

   “너그럽게? 이거 범죄인 거 모릅니까!”

   주완이 우산을 던지고 이장의 멱살을 잡았다. 눈으로 들이치는 빗물에 주완은 눈을 찡그렸는데 눈 틈 사이로 살짝 웃는 듯 아닌 듯 애매한 이장의 표정이 보였다. 이장이 이내 주완의 손을 억세게 뿌리치자 주완이 휘청였다. ‘범죄’라는 주완의 외침에 굿판의 뒤편에서 있던 마을 사람들이 이장과 주완을 바라보았다. 이장이 그들을 흘끗 보았다가 다시 주완을 쳐다보았다.

   “이봐요, 최 선생. 우리가 댁의 개를 훔쳤다는 증거 있어요? 있습니까? 한번 찾아보시죠. 증거라도 대시고 범죄든 뭐든 말씀하세요. 그렇다고 사람을 죽였습니까? 누가 헤치기라도 했나요? 개 한 마리입니다. 경찰에 신고해서 범인 잡으면 그 범인한테 변상이라도 받으시든지요.”

   주완은 어이가 없었다. ‘변상’이라니. 순간 저 굿상을 뒤엎을까, 망치로 저 비석을 깨부수어 버릴까 싶다가 굿에 정신이 팔려있는 마을 사람들을 보자 그들이 발하고 있는 묵직한 기운이 훅 밀려오는 것 같아 순간 무서웠다. 집에 있는 아내와 아들 생각도 났다. 결국 집으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주완이 집에 가는 길로 성큼성큼 걸어가며 굿판을 쏘아보았는데, 무당이 천주교 신부나 개신교 목사처럼 은숙의 머리에 손을 대고 무어라 중얼거렸고 은숙은 고개를 숙인 채 합장한 두 손을 연신 비비고 있었다. 그렇게 무당의 기도 비스름한 것이 끝나자 은숙은 비석을 부여잡고 아들을 살려달라며 울부짖기 시작했다. 주완이 돌아가는 뒤로 합주 소리가 영원히 그치지 않을 것처럼 그 기세를 몰아가고 있었다.

   다음 날 주완은 파출소에 도난 신고를 했다. 주완이 흥분해서 그동안 있었던 일을 다 이야기했으나 순경은 심드렁한 반응이었다. 순경은 ‘개 한 마리’라는 말을 꺼냈다가 주완의 눈치를 보며 입을 닫았고, 건조한 말투로 진술서를 쓰고 가라 했다. 호두가 사라진 사건에 대해 마을 사람들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 뒤로 파출소에서 경찰들이 마을에 나와 몇 차례 조사하는 모습이 보였지만 결국 주완이 신고한 지 한 달도 채 안 되어 증거불충분으로 그가 혐의자로 지목했던 이장과 은숙은 무혐의 처분되었다. 주완은 억울했지만 현재로서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제 10개월 정도만 더 있으면 되고 선납한 1년 치 월세의 일부를 집주인에게 다시 돌려달라는 실랑이를 해야 하는 것도 피곤했으며, 조용히 있다가 때가 되면 서울로 올라가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하지만 곧 다른 사건이 발생하면서 마을이 들썩대기 시작했다. 마을 앞에 있는, 일본인 무당이 묻혀 있는 그 자리에 있던 비석의 윗부분 1/4 정도가 둔기에 맞아 깨져 있었다. 군내 체육대회로 마을 사람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 벌어진 일이었다. 비석이 훼손된 사건이 발생한 후 마을에 암 환자가 5명 더 발생했다. 주민 5명이 최근 들어 배가 자주 아프고 어디 부딪치지도 않았는데 팔다리에 멍이 들며 각혈을 하는 등 이상 증세를 보여 군내 병원에 갔다가 빨리 큰 병원으로 가라는 진단을 받았고, 결국 대학병원에서 그들 중 세 명은 백혈병, 한 명은 위암 4기, 나머지 한 명은 방광암 3기 확진을 받았다. 123세대뿐인 연심리에 주완의 옆집 은숙의 아들을 포함 모두 6명의 암 환자가 잇달아 발생한 것에 대해 마을 사람들은 다음이 내가 될지도 모른다는 극도의 공포를 느꼈고, 비석이 깨졌기 때문에 묻혀 있는 무당이 진노했다는 이야기, 작년부터 굿에 훼방을 놓는 교회 사람들 때문이라는 이야기, 주완의 집에 있었던 호두가 제물로 부적절했다는 이야기 등 온갖 소문들이 마을을 떠돌았다.

 

   마을회관에 연심리의 100여 명 정도 거의 모든 세대주들이 모였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의자를 바깥으로 치우고는 모두가 신문지를 깔고 바닥에 앉았다. 이장은 와야 할 사람들이 대부분 온 것을 확인하고는 단상에 나가 마이크를 잡았다.

   “바쁘실텐데 오늘 이렇게 뵙자고 한 이유는 깨진 비석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의논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갑자기 수그러들었다.

   “우선 범인부터 잡읍시다!”

   누군가가 외치자 사람들이 ‘맞어, 맞다’며 맞장구를 쳤다.

   “정씨 할아버지,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그렇죠. 범인부터 잡아야죠. 그러려면 경찰에 신고부터 해야겠죠. 그런데 경찰에 신고해도 너무 오래 걸릴 수 있어요. 제가 아는 형사님한테 물어보니까 이런 사건 처리에 1년도 더 걸릴 수 있다고 합디다. 그렇게 되면 내년에 굿을 못 할 수도 있습니다.”

   “청와대 신문고에 올리는 건 어떨까요? 그럼 좀 더 빨리 처리해주지 않을까요?”

   “고려해보겠습니다.”

   “우리가 직접 조사합시다!”

   “맞아요. 경찰한테 맡겨서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거 보다 차라리 우리가 직접 합시다.”

   우리가 직접 조사하자는 사람들의 제안에 이장의 입가가 살짝 올라갔다. 이장이 질문했다.

   “우리가 직접 할 수 있을까요?”

   “제가 돕겠습니다.”

   얼마 전에 아버지가 방광암 3기 확진을 받은 남자의 아들이 손을 들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장님 결심하시면 제가 뭐라도 하겠습니다.”

   그러자 어떤 남자도 손을 들었다. 백혈병 진단을 받은 아주머니의 아들이었다.

   “저도 하겠습니다.”

   이번에는 세 명이 손을 들었다. 역시 최근에 암 진단을 받은 자들의 자식들이었다. 이장이 환한 얼굴로 이분들에게 박수를 보내자고 하자 모두 박수를 쳤다. 그렇게 40대와 50대 정도의 비교적 젊은 사람들 20명이 자경단원으로 뽑혔다.

   “여러분께서 이렇게 열정적으로 도와주시는 덕분에 범인을 빨리 색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일단 저와 그리고 이렇게 모인 분들이 조사를 해보는 걸로 하죠.”

   마을 사람들을 내보낸 후 자경단이 남아 회의를 했고 그들은 우선 연심리의 옆, 각포리에 있는 교회 목사를 혐의자로 지목했다. 이장과 자경단원들은 돌아오는 일요일에 교회를 찾아가 목사를 조사하기로 했다.

 

   교회는 40평 정도의 단층 가건물로 파란색 지붕 아래에 살구색 샌드위치판넬이 죽 둘려 있었고 튀어나온 대문 위에 얼기설기 올라간 철골의 맨 위, 갈색 십자가가 우뚝 서 있었다. 주말 2부 예배가 끝나는 정오에 맞춰 이장과 자경단원 10명이 각포리 교회에 앞에 모여 이장을 필두로 당당한 걸음으로 대문 안에 들어갔다. 이장은 예배당 입구에 서 있는 목사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앉으세요. 자리가 몇 개 없습니다.”

   목사는 자신을 보러온 연심리 사람들을 떨떠름히 안내했는데, 목사실은 책상 하나에 접이식 의자 5개만이 들어갈 정도로 협소했다. 할 수 없이 이장과 4명만 앉고 나머지 사람들은 벽에 죽 둘러붙어 서 있게 되었다. 앉자마자 이장이 입을 뗐다.

   “지난 9월 28일 토요일에 정암군민 체육대회 열렸던 거 아시죠?”

   목사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낮에 어디에 계셨습니까?”

   “그걸 왜 제가 말해야 하죠?”

   “우리 연심리 초입에 비석 있는 거 아시죠? 그날 비석이 훼손됐습니다.”

   “그게 저하고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당신들이 경찰이야 뭐야!”

   목사가 소리치자 약속이라도 한 듯 문이 열리면서 밖에 있던 신도들이 들어오려고 했다. 하지만 들어갈 공간이 없자 밖에서 신도들이 ‘어디 와서 행패냐’며 크게 소리쳤다. 목사는 신도들을 보자 자리에서 일어나 갑자기 성경 구절을 읊기 시작했고, 그가 외치는 중간중간, 신도들이 ‘아멘’하고 화답했다.

   “그 땅의 원주민을 너희 앞에서 다 몰아내고 그 새긴 석상과 부어 만든 우상을 다 깨뜨리며 산당을 다 헐고 그 땅을 점령하여 거기 거주하라! 내가 그 땅을 너희 소유로 너희에게 주었음이라! 하나님께서 내리신 민수기 33장 53절의 말씀입니다. 마음 같아선 그렇게 하고 싶지만 저는 그런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았습니다. 이렇게 당신들처럼 막무가내로 와서 행패를 부릴 만큼 무식하지는 않기 때문이죠.”

   “무식하지 않은 분들이 우리 마을 의식할 때에 그렇게 와서 난리를 피웁니까? 확성기로 찬송가 틀고 막!”

이장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목사를 쏘아보며 소리쳤다. 목사는 이장의 눈을 지긋이 바라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우리가 당신들을 구원하기 위함이지요. 흠, 암튼! 그날 나는 여기서 토요 예배를 준비하고 예배했습니다. 저기 보시는 우리 신도들이 그 증거입니다. 원하시면 오신 김에 교회 한 번 둘러보세요. 당신들이 원하는 증거가 있는지도 보시고 이왕이면 주님의 증거도 한번 느끼셨으면 합니다.”

   “구원? 누가 누굴 구원합니까. 예수가? 예수가 어디 묻혀 있는지도 몰라서 하늘로 올라갔다고 억지로 믿는 건 아니고? 우리가 믿는 그분은 최소한 우리 마을에 잠들고 계신 건 확실하지. 누가 미신일까? 내 눈엔 아무런 실체도 없는 예수를 들먹이는 당신들이 사람들 현혹해서 돈이나 뜯어가는 것 같은데.”

흥분한 목사가 이장의 얼굴에 대고 외쳤다. 소리치는 목사의 볼살이 떨렸다.

   “사탄아 물러가라!”

   밖에 있는 교회 신도들 중 일부가 목사실에 난입하여 연심리의 자경단원들을 끌어내려고 하면서 몸싸움이 벌어졌다. 그러자 목사가 ‘비켜드리세요.’라고 하며 원하는 대로 하라는 듯 손날로 바깥을 가리켰고, 신도들이 자경단원들을 잡은 손들을 놓으면서 상황이 진정되었다. 목사는 예배를 보러 온 신도들이 이미 많이 와 있었으므로 거리낄 것이 없었다.

그렇게 연심리의 이장과 자경단원들이 증거를 찾으려고 교회를 둘러보았지만 교회 사람들이 비석을 깨뜨렸다는 증거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오십여 명 되는 교회 신도들은 교회 밖에 빙 둘러서서 연심리 사람들을 수군대며 구경하고 있었고 신도들 중 몇 명이 ‘사탄아 물러가라’라고 외쳤지만 자경단원들은 위축되어 별다른 저항을 하지 못했다. 교회 창고의 한쪽에 망치를 비롯한 공구들을 모은 나무 상자가 있어 이장과 자경단원들이 살펴보았으나 돌을 깬 듯한 흔적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아무런 수확도 없이 터덜터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자경단은 다급해졌다. 이제 희생양이라도 찾아내어 술렁이는 마을 민심을 잠재워야 할 판이었다. 자경단원 중에 한 명이 범인은 ‘주완’일 수 있다는 제안을 했다.

   “자기 개도 잃어버렸고 경찰에서도 뜻대로 되지 않았으니 그럴 만도 할 거 같은데요.”

 

   연심리의 자경단원 다섯 명이 이장과 함께 불이 꺼져 있는 주완의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마침 아들 치료차 서울의 피부과 병원에 다녀온 주완의 차가 그들 앞에서 멈췄다. 주변이 어둑해서 주완은 그들을 한참 쳐다보다 사람들 속에 있는 이장을 겨우 알아봤다.

   “무슨 일이시죠?”

   주완이 차창을 반쯤 내리고 물었다. 이장이 답했다.

   “뭐 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잠시 시간 좀 내주시죠.”

   “알겠습니다. 일단 집에 아내하고 아이 좀 들여보내구요.”

   주완은 불안해하는 아내를 안심시켰고 집에 잠시 들렀다가 그들을 따라나섰다. 그들은 폐교 운동장으로 주완을 데리고 갔다. 걸어가는 내내 그들과 주완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나지막이 내려앉은 가을 밤공기가 무거웠고 텁텁했다. 운동장의 한복판에 들어서자 자경단원 중 한 명이 주완에게 휴대폰을 내놓으라고 했다.

   “뭡니까, 휴대폰은 갑자기 왜요?”

   주완이 거부하자 휴대폰을 요구했던 그 사내가 주완의 양쪽 주머니를 뒤졌고, 결국 오른쪽 주머니에서 휴대폰과 사원증이 담긴 케이스가 딸려 나왔다. 그 남자는 사원증 케이스를 이리저리 보다가 ‘이게 뭐야’ 하며 그냥 한쪽에 툭 던졌고, 주완의 휴대폰에 녹음 기능이 작동되고 있는지 확인했다. 주완은 휴대폰에 녹음기능을 미리 켜놓았었던 터였다.

   “이, 이, 이렇게 녹음하고 계실까 봐. 여기에 놓을 테니 이따가 가져가세요.”

   그 사내가 녹음 정지 버튼을 누른 뒤, 주완의 휴대폰도 바닥에 내려놓았다.

   “녹음할까 봐 무서울 정도로 무슨 켕기는 일을 하겠다는 겁니까?”

   이장이 주완의 말을 막고 나섰다.

   “마을 비석이 훼손되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생각해도 최주완 선생이 그랬을 것 같아서요.”

   “전 하지 않았습니다. 왜 제게 뒤집어씌우는 겁니까?”

   “지난달에 있었던 군민 체육대회 빠지고 어디 가셨었습니까?”

   “아이 때문에, 서울에 병원 다녀왔습니다.”

   “개 때문에 아직 감정이 좋지 않으시죠?”

   “좋을 수는 없겠죠.”

   “그러니까요. 제물로 바친 개새끼 한 마리가 뭔 대수라고 마을 사람들이 정말 소중하게 모시는 묘의 비석까지 깨고 난립니까, 난리가!”

   이장의 입에서 침이 여러 방울 주완의 얼굴로 튀었다.

   “당신들이 우리 호두 데려가서 죽인 거 맞지?”

   “호두? 아, 당신이 기르던 개새끼. 맞다면 어떡하시게? 경찰들도 봤잖아요. 그까짓 개새끼 한 마리 별일 아닌 걸로 하는 거. 어쨌거나 그렇다고 비석에 화풀이하면 안 되지.”

   “난 안 했다고! 할 말이 이거였다면 난 가겠습니다.”

   주완이 허리를 숙여 휴대폰과 사원증 케이스를 들고 일어날 찰나, 자경단원의 한 명이 주완의 옆구리를 발로 찼고, 주완이 풀썩 쓰러졌다. 주완은 자리에서 이내 일어나 그를 발로 찬 사내의 허리를 안으며 달려들었고 이번에는 그자가 쓰러졌다. 뒤이어 주완이 쓰러진 그의 얼굴을 발로 가격하자 이장을 비롯한 다른 자경단원들이 주완을 그에게서 끌어내 주완의 팔을 뒤로 잡았다. 씩씩거리고 있는 주완에게 이장이 다가와 주완의 뺨을 한차례 후려쳤다.

“우리로서는 빨리 마을을 안정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당신이 비석을 깼든 안 깼든 중요하지는 않아. 일주일 뒤에 마을 회의가 열릴 텐데 그때 당신이 그랬다고 인정만 해. 당신이 했다고 인정만 하면 그 뒤에는 우리가 험한 일 생기지 않게 막을 테니까 믿고. 그렇게 못하겠다면 무슨 일이 생겨도 당신 탓이지. 험한 꼴 당하고 싶지 않으면 내가 말하는 대로 해. 알아듣겠나?”

   주완이 이장을 쏘아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이장도 그를 한동안 쳐다보다가 사람들과 자리를 떴다. 이장은 걸어가다 잊어버린 말이 생각났다는 듯 다시 주완에게 와 손가락으로 주완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어디 가서 허튼 소리하지 마세요. 경고합니다.”

   주완은 그들이 떠난 후 다리에 힘이 풀려 그만 자리에 주저앉았다.

 

   지난 9월 28일 군민 체육대회가 열린 날, 마을 사람들이 대부분 체육대회에 참석했고 은숙은 서울에 있는 아들의 병원에 들르기 위해 버스를 타려고 마을 어귀를 벗어나던 참이었다. 수술을 앞둔 아들을 생각하며 쓰린 마음을 달래고 있던 중 그녀의 눈에 들어온 건 일본인 무당의 묘에 있는 비석이었다. 대장암 수술을 하더라도 5년 이상 살 확률이 50% 정도라는데 은숙은 아들을 낫게만 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나라도 더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녀는 마을의 이리 저리를 둘러본 뒤 집으로 다시 가 가방에 망치를 담아 가져왔다. 공구상을 했던 죽은 남편이 남겨 놓은 망치 중 손으로 잡을 수 있는 가장 큰 망치였다. 은숙은 묘지 앞에서 절을 두 번 반을 하고는 망치를 두 손으로 잡아 비석의 가장자리를 있는 힘껏 내리쳤다. ‘쾅.’ 예상치 못했던 큰 소리와 반동에 은숙은 그만 망치를 놓치며 뒤로 자빠졌다. 바닥을 기어가 망치를 주우면서 그녀는 누가 보지는 않는지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 다시 한번 내리쳤다. ‘쾅.’ 이번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쾅.’ 세 번째로 내리치는 순간 비석 윗부분의 조각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녀는 이 비석 조각들을 아들에게 가져가면 좋은 기운이 그에게로 옮겨갈 것만 같았다.

 

   은숙의 아들이 입원해 있는 서울의 대학병원에 얼마 전 방광암 3기 확진을 받은 연심리의 60대 남성도 입원했다. 60대 남자가 입원한 첫날, 마침 은숙도 아들의 병실에 있었기에 그 남자의 아내, 희주가 은숙 아들의 병실을 방문했다. 은숙의 아들은 지난주 대장암 수술을 마치고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내려온 지 며칠 되지 않았고 희주가 은숙 아들의 병실에 방문했을 때에 그는 링거를 여러 개 달고 잠을 자고 있던 중이었다.

   “괜찮아요? 수술은 잘됐어요?”

   희주가 걱정스럽다는 듯한 표정으로 은숙에게 물었다.

   “네. 암 부위랑 주변은 잘 제거했데요. 근데 재발할 수도 있다고 해서 걱정이에요. 곧 항암도 해야 하는데 견딜 수 있을는지.”

   은숙이 말을 마치고 사물함을 열어 사과주스 한 팩을 꺼내 희주에게 건넸다. 희주는 은숙이 사물함을 열었을 때 그 안에 망치와 돌조각 비슷한 것들이 놓여 있는 것을 얼핏 보았다. 자세히 본 것은 아니었으므로 그것들이 무엇인지 긴가민가했다. 희주는 생각에 잠겼다가 은숙의 채근에 정신을 차렸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몇 번 불렀는데. 이거 드세요.”

   “아, 예. 죄송해요. 잘 마실게요.”

   희주는 사과주스에 빨대를 꽂은 후 쭉 들이키면서도 생각하다 은숙에게 말했다.

   “저기, 영식 엄마. 우리 식구 중에 병원 입원한 게 이번이 처음이라 병원에서 필요한 물건을 잘 못 챙겼어요. 오다가 보니까 병원 지하 1층에 마트 있던데 나랑 같이 가서 좀 골라줄래요?”

   “경황없었겠네요. 지금 같이 가요. 우리 영식이도 지금 자고 있으니까. 저도 심심하던 차에 잘됐네요.”

   그렇게 희주와 은숙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1층 마트로 내려갔다.

   “치약, 칫솔, 샴푸, 비누 같은 건 챙겼다고 했죠? 휴지나 티슈는 챙겼어요?”

   “아뇨. 참. 이거 어쩌나. 제가 지갑을 놓고 왔네요. 영식 엄마 잠깐 여기서 좀 기다려 줄래요? 정말 미안해요.”

   희주가 지갑을 병실에 놓고 왔는 듯 둘러댔다.

   “그럼 제 카드로 계산하고 나중에 주셔도 괜찮아요.”

   “아이, 미안해서 그러지. 마침 제가 좀 드릴 것도 있고 해서. 애기 아빠 병실에 좀 다녀올게요.”

   “그래요. 그럼. 이거저거 좀 보고 있을게요. 내려오면 전화해요.”

   희주는 은숙에게 웃어 보이며 마트를 벗어난 뒤 엘리베이터로 뛰어갔다. 희주에게 이 병원 엘리베이터는 유난히 느린 듯했다. 엘리베이터 한 대는 지하 2층에서 지하 3층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중이었고 나머지 한 대는 순탄히 내려오다가 4층에서 3층으로, 3층에서 2층으로, 2층에서 1층으로 한 층씩 멈추며 천천히 내려왔다. 희주가 양쪽 엘리베이터를 번갈아 보며, 그녀의 눈길이 분주했다. 희주의 입에서는 ‘빨리, 빨리’ 라는 탄식이 나왔다. 마침내 올라가는 것을 타고 그녀는 은숙 아들의 병실이 있는 7층을 눌렀다. 올라갈 때는 걸리는 층이 없었고 7층에 도착하자마자 희주는 은숙 아들의 병실을 향해 달음질쳤다. 여전히 은숙의 아들은 잠을 자고 있었다. 다행이었다. 희주는 사물함으로 가 문을 당겨보았다. 역시 예상대로 잠겨 있었고, 은숙의 비밀번호를 모르는 희주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머릿속에 그렸던 대로 병동 간호사실 책상에 앉아 있는 간호사에게 달려가 물었다.

   “사물함 비밀번호를 눌러도 안 열려요.”

   “몇 호시죠?”

   “708호 양영식 환자 보호자에요.”

   “성함이?”

   “안은숙이에요. 안.은.숙.”

   앉아 있는 간호사가 컴퓨터를 입력하고 화면을 보던 중, 다른 간호사가 불쑥 끼어들었다. 희주의 민원을 처리해주고 있는 간호사보다 나이가 들어 연차가 높아 보이는 간호사였다.

   “박쌤. 705호 콜 들어왔던데 가봤어요?”

   “아, 죄송합니다. 이것만 처리하고 가겠습니다.”

   “빨리 가봐요.”

   일을 빨리 처리하라는 다른 간호사의 재촉에 컴퓨터 화면을 보고 있던 간호사가 갑자기 분주해졌다. 그녀는 여유가 없는 듯 다급하게 희주에게 말했다.

   “지금 마스터키 가지고 갈게요. 잠시만요.”

   희주는 마스터키를 가지고 온 간호사를 따라 708호로 들어갔다. 간호사는 은숙의 사물함을 열어주고는 새로운 비밀번호를 재설정하는 방법을 급히 알려준 뒤, 서둘러 떠났다. 희주는 살짝 열려 있는 은숙의 사물함을 열어젖혔는데, 그 안에 큰 망치와 비석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것으로 보이는 조각들을 확인했다. 희주의 눈이 커지고 손이 떨렸다. 희주는 휴대폰으로 사물함 안에 있는 비석 조각들의 사진을 찍어 자경단원으로 활동하는 아들에게 보내주면서 연락하여 자신이 은숙의 아들 병실에서 본 사실을 알려주었다.

 

   주완이 폐교에서 1시간 조금 넘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앉아 있다 나와 집으로 들어가는 길, 옆집 은숙의 집으로부터 화기가 느껴져 그곳으로 뛰어갔다. 기름기 그득한 탄 냄새에 손으로 코와 입을 막았다가 안에 누구 있냐고 소리쳤지만 아무런 기척이 없었고 집의 등은 모두 꺼져 있었다. 감나무 옆에는 검게 그을린 개가 쓰러져 있었다. 그는 가슴이 뛰고 순간 무엇을 해야 할지 아득했으나 정신을 차려 우선 119에 신고한 후, 자신의 집으로 뛰어가 소화기를 가져와 번지고 있는 불에 분사했다. 은숙의 집 마당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는 감나무를 타고 오르는 불이 뜨거웠고 가득한 연기가 눈과 코를 괴롭혔지만 그는 집중했다. 주완의 뒤에서 영신이 제발 그냥 나오라며 소리치고 있었으나 주완은 그의 손등이 붉게 익을 때까지 소화기를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소화기의 분말이 불길을 조금 잠재우기는 했지만 집을 삼킬 듯 번지는 기세를 누르기는 어려웠다. 소화기의 레버를 잡은 주완의 오른쪽 손목의 힘이 풀려갈 때쯤, 소방차가 도착했다.

   이제 막 은숙의 집 화재 현장에서 돌아온 주완은 더 이상 이 미친 마을에서 살 수 없다며 영신에게 지금 당장 짐을 챙겨 서울의 집으로 올라가자고 했다. 주완의 온몸이 땀에 젖었지만,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주완은 망설임 없이 영신과 그의 아들을 데리고 그날 밤 서울로 올라왔다. 그리고 다음 날 주완은 연심리를 관할하는 파출소가 아닌 정암 경찰서에 이장과 자경단원들이 자신을 협박했고 이들이 은숙의 집에 불을 지른 것으로 의심된다며 신고했다. 주완의 사원증 케이스에 녹음기능이 있었고 자경단원들이 주완을 끌고 간 폐교 운동장에서 있었던 대화들은 그 사원증 케이스에 고스란히 녹음되어 있었다. 이 시골에 사는 자경단원들이 사원증 케이스 녹음기는 보았을 리가 없었을 것이므로, 주완이 그의 집 앞에서 그들을 따라나서기 전 잠시 집에 들러 사원증 녹음기와 휴대폰의 녹음기능 두 개를 모두 켜고 간 것이 주효했다. 주완의 예상대로 그들은 주완의 휴대폰 녹음만 발견했을뿐 사원증 케이스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주완의 신고를 접수한 정암경찰서는 주완을 참고인으로 소환하여 조사를 마쳤고, 이번에는 이장이 피의자 신문을 받기 위해 경찰서에 출석했다.

   “앉으세요. 정암경찰서 강력팀 이진삼 경장입니다. 신분증 주시죠.”

   이장이 형사에게 운전면허증을 건넸다. 형사가 이장의 얼굴을 확인한 뒤 복사기로 가 운전면허증을 복사했고 자리에 돌아와 이장에게 그것을 돌려주었다. 형사가 말했다.

   “오늘 신문에서 일체의 진술을 하지 아니하거나 개개의 질문에 대해 진술을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진술을 하지 않더라도 불이익을 받지 않습니다. 진술을 거부할 권리를 포기하고 행한 진술은 법정에서 유죄의 증거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신문을 받을 때에는 변호인을 참여하게 하는 등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해하셨죠?”

이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술거부권 행사하실 건가요?”

   “아뇨.”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행사하실 건가요?”

   “아뇨. 아직 변호사를 구하지 못해서요.”

   “그럼 이제 피의자로 호칭합니다. 신문 시작하겠습니다.”

   형사와 이장 간에 영상녹화 희망 여부, 전과 여부, 병역, 포상, 학력 등에 관한 문답이 오고 간 뒤 형사가 이장에게 종교에 대해 물었다.

   “종교는 무엇인가요?”

   “이걸 뭐라고 답해야 하나.”

   “뭐, 고민하실 필요는 없어요. 형식적인 거니까.”

   “우리 마을에 무당의 무덤이 있는데 그분이 우리를 지켜주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형사가 고개를 갸웃했다. 몇 초 정도 생각하다 말하면서 타자를 했다.

   “무속 신앙이라고 적겠습니다.”

   이장이 되물었다.

   “그게 무속 신앙인가요?”

   “아이,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니잖아요. 그리고 천주교, 개신교, 불교 뭐 이런 것도 아니고 뭉뚱그리면 그게 맞으니까. 그냥 그렇게 갑시다.”

   이장은 마땅치 않다는 듯 가만히 있었다. 자신이 믿는 존재가 ‘무속’이라는 세속적인 통칭 하나로 깡그리 묶여서 어딘가에 내동댕이쳐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더 말하고 싶었지만 오늘은 경찰의 조사를 받으러 나온 것이니 형사의 심기를 건드려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더 이상 그에 관해 말을 하지 않았다.

   “피의자는 피해자 안은숙을 알고 있나요?”

   “예. 우리 마을에 사는 주민입니다”

   “2022년 10월 10일 21시 경에 피해자 안은숙씨의 집에서 화재가 발생한 사실을 알고 있나요?”

   “화재 사고가 발생한 것은 알고 있습니다. 제가 이장이니까요.”

   “사건 당일 21시 전후로 피의자는 어디에 있었습니까? 18시부터 22시까지 어디에 계셨는지 구체적으로 말씀해보세요.”

   “계속 집에 있었는데요.”

   “집이요?”

   “네.”

   형사는 물음을 멈추고 마우스를 딸깍 굴리며 모니터 화면 속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이장은 형사의 마우스 클릭 소리가 거슬렸다. 그렇게 형사가 몇 번 클릭을 하더니 모니터를 이장의 방향으로 돌렸다.

   “피의자 집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CCTV 동영상입니다. 화면 아래에 2022년 10월 10일 18시 5분이라고 되어 있고 피의자가 집에서 어딘가로 나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지만 이 방향이면 피의자 집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 피의자 집에서 밖으로 나가는 거죠. 그리고 이 동영상을 보시면 같은 날 22시 13분에 집으로 들어가셨는데요?”

   “제가 헷갈렸나 봅니다. 그날 이장협의회 사무실에서 가져와야 할 서류가 있어서 나갔다 온 것 같네요.”

   형사는 이장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경찰의 조사를 받아본 적 없는 이장은 CCTV를 차마 생각하지 못했다. 이장의 등에 땀이 찼고 가슴이 답답해져 오면서 그는 몇 차례 심호흡을 했다. 수년 전 이장이 주도하여 군청에서 예산을 집행해 범죄예방 목적으로 연심리의 이곳저곳에 설치했었는데 그동안 CCTV에 관해 무언가 문제 된 적이 없었으므로 계산에 넣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CCTV가 이장의 집 앞에 있었던 것도 아니었기에, 그는 거칠 것 없이 마을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녔었다.

   “아까는 집에 계속 계셨다면서요?”

   이장이 ‘흠’하고 헛기침을 한 후 답했다.

   “헷갈릴 수도 있죠.”

   이장의 얼굴을 한동안 쳐다보던 형사가 아무 말 없이 타자를 쳤다. 이장이 오른손 엄지손톱으로 왼손 엄지손가락의 살집을 긁기 시작할 때 형사가 타자를 멈추고 물었다.

   “그런데 CCTV가 거기만 있는 게 아니구요. 이것도 보시죠.”

   형사의 마우스를 딸깍하는 소리가 이장의 마음속에서 덜컥거렸다. 이번에 형사가 보여 준 CCTV 동영상에서는 이장이 자경단원들과 함께 은숙의 집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이건 피해자 안은숙의 집 방향을 비추는 CCTV인데요. 이쪽이 피해자의 집 방향입니다. 아래를 보시면 2022년 10월 10일 20시 53분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피의자가 이 시간에 사람들하고 여기를 지나간 이유를 설명해주시죠.”

   “……”

   이장이 아무 말을 하지 않자, 형사는 방금 이장에게 했던 질문과 함께 ‘묵묵부답’이라고 피의자신문조서에 입력했다.

   “여기 화면 보시면 이 사람은 페트병 4개를 양팔에 끼고 있고, 이 사람은 망치를 들고 있는 것 같은데요. 이 사람들이 왜 이것들을 들고 가는 겁니까?”

   “……”

   이번에도 이장은 묵묵부답이었다.

   “저, 형사님. 제가 변호사를 구한 뒤에 변호사하고 같이 오면 안 될까요?”

   “잠시만요.”

   형사가 컴퓨터 오른쪽에 있는 서류 더미에서 검정색 서류철끈으로 묶인 문서 하나를 꺼내 몇 장 넘기더니 이장에게 들이밀었다.

   “거기에 제가 형광펜으로 칠한 부분을 한번 보세요. 경찰의 화재 현장 감식 결과입니다.”

4. 결론

화염의 확산 형태로 보아 발화지점은 피해자 집의 담장으로 보이고 담장에서부터 마당을 거쳐 집의 벽체에까지 화염이 확장된 것으로 관찰된다. 발화지점과 화염이 확산된 경로 대부분에서 인화성 물질인 휘발유가 검출되었고 살포 매커니즘의 특징인 균일한 연소형태(pool-shaped burn pattern)와 튀김 연소 형태(splash pattern)가 확인되는바 인위적인 요인으로 착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전기적인 특이점은 관찰되지 않아 전기적 원인은 배제 가능하다고 추정된다. 주변에서 라이터 및 착화와 관련된 도구 등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처음 사건 현장을 발견한 참고인과 화재 진압 소방관들이 모두 일관되게 연소가 급격히 확대되었다는 진술도 하였는바, 위와 같은 점들을 종합할 때에 방화일 가능성이 상당하다.

   “CCTV에서 피의자와 함께 가고 있는 사람의 양 팔에 들려 있는 페트병에 휘발유가 담긴 것으로 보이고 피의자와 이 사람들이 피해자의 집에 방화를 한 것으로 보이는데 어떤가요?”

   “……변호사 선임하면 진술하겠습니다.”

   “진술을 거부하신다는 건가요?”

   “……”

   “피의자 강경원씨. 피의자를 현재 2022년 10월 22일 15시 24분부로 현주건조물방화 혐의로 긴급체포합니다.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고, 변명의 기회가 있고, 불리한 진술을 거부할 수 있으며, 체포적부심을 법원에 신청할 수 있습니다. 변호사는 가족들에게 연락하셔서 선임하세요. 전화 연락을 한번 해드릴 수 있게 하겠습니다. 오늘 조사는 일단 이걸로 마무리하고 다음에 더하죠.”

   형사의 체포에 관한 고지를 멍하니 듣고만 있던 이장은 형사가 그에게 다가와 수갑을 채우고는 유치장으로 안내하자 비로소 ‘내가 왜!’라고 하며 몸부림쳤다. 형사가 다시 한번 이렇게 행동하면 공무집행방해죄도 추가된다고 경고하자 그는 그제야 누그러졌다. 그렇게 경찰은 수사 끝에 이장과 자경단원들을 주완에 대한 협박죄와 은숙의 집에 대한 현주건조물방화죄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은숙 아들 병실의 사물함에서 망치와 깨어진 비석 조각 사진을 찍어 자경단원인 아들에게 보낸 희주도 현주건조물방화 방조죄 혐의로 검찰에 송치되었다.

 

   연심리뿐만 아니라 연심리가 속한 정암군의 여러 마을들에서 암 환자가 잇달아 발생한 사실이 확인되어 정암군청에서는 원인 규명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질병관리본부 만성병 조사팀에 암 역학조사를 의뢰했다. 질병관리본부가 환경부와 함께 역학조사를 한 결과, 연심리는 정암강 하류에 위치해 있었는데 강 상류에 있던 공장들이 벤젠과 벤지딘 등 폐수를 대량으로 장기간 방류한 사실이 확인되었고 이 때문에 정암강을 끼고 있는 연심리를 비롯한 여러 마을에서 암 환자들이 동시에 발생한 것으로 조사팀은 결론 내렸다. 조사팀은 이 결론을 연심리 마을 사람들이 새로 뽑은 이장에게 전했고, 정암군청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공장들을 가동하고 있는 기업들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 집단 소송을 추진한다면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도 했다. 마을 사람들의 일부는 조사팀의 결론을 수긍했지만, 상당수는 비석이 훼손되었기 때문이라고 여전히 믿었다. 암 환자 가족들의 일부는 갹출하여 마을 행사와는 별개로 자기들만을 위한 굿을 하기도 했다.

 

*

 

   주완의 가족이 서울로 무작정 올라온 후 주완은 연심리에서 머물렀던 집의 주인에게 남은 임차 기간의 일부에 대해서라도 미리 지급했던 월세를 돌려달라고 했다. 그러나 집주인은 새로운 세입자가 들어오면 그때부터 남은 기간을 계산하여 월세를 반환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월세만 줄줄 새는 석 달이 지나갔지만 새로운 세입자가 나타나지는 않았고 결국 주완은 남은 다섯 달 치의 월세 중 석 달 치만을 받고 끝내는 것으로 집주인과 합의했다. 하지만 집주인이 이번에는 세금 문제 때문에 은행 계좌 송금을 할 수는 없고 직접 연심리로 와서 현금을 받아 가라고 했다. 주완은 와서 받아 가라는 식의 집주인의 태도가 못마땅했고, 특히 연심리에 다시는 발을 들여놓고 싶지는 않았으나, 빨리 마무리하자는 심정으로 3개월 치의 월세를 돌려받기 위해 집주인과 약속한 날 연심리로 향했다.

   주완은 연심리의 초입에 다다라 잠시 차를 세우고는 여기저기 둘러보았다. 그런데 일본인 무당의 묘지와 비석이 있어야 할 자리에 그것들이 없었다.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정암군청에서 일본인 무당의 묘지를 무연고 묘지로 처리했고 파묘 후 회수한 유골을 화장하여 무연고실에 안치했었던 터였다. 대신 묘지가 있던 자리에 갈색 십자가를 하늘에 닿을 듯 높게 세운 교회가 올라가고 있었다. 각포리 교회의 목사가 각포리에 있던 교회 가건물을 허물고 이곳에 새로 교회를 짓고 있었다. 주완은 연심리 교회 신축 현장의 옆에서 교회의 목사와 각포리 교인들이 교회의 무사한 완공을 바라는 기도회를 열고 있는 것을 보았다. 목사는 연심리가 미신을 믿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암과 같은 중병에 걸린 것이며 지금이라도 당장 회개하고 주님의 품으로 돌아온다면 병과 모든 걱정 근심이 사라질 것이라는 설교를 했다. 기도회 자리에 연심리 암 환자들의 가족 일부도 참석했다. 그들은 목사가 힘주어 외칠 때마다 두 손을 모으고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아멘’을 외쳤다. 주완의 코에, 불현듯 호두를 제물로 바친 그 굿판의 냄새가 비릿하게 맴돌았다. 동시에 주완의 머리에, 굿판이 벌어지는 자리를 채운 마을 사람들이 이제는 교회 예배당의 빈자리를 채우는 모습이 그려졌는데,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 두 장면의 차이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호두를 잃고 난 후 무당의 묘지와 비석을 볼 때마다 느꼈던 갑갑함이 새로 올라가고 있는 교회를 보면서도 반복되자 그는 다시 차에 올라 집주인과의 약속 장소로 향했다. 끝.

 

 

 

*저작권 등록이 된 습작 소설입니다. 저작자의 허락 없는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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