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와 극작가를 위한 법률

내가 쓴 소설과 극본, ‘표절’당했다고 인정받을 수 있을까 4

김지환 변호사 2024. 9. 15.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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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침해를 인정하기 위한 두 가지 요건-객관적 요건인 실질적 유사성과 주관적 요건인 의거관계를 살펴보았고, 이 요건들이 모두 충족이 된다면 법원에서는 A 저작물의 저자가 B 저작물을 표절했다, B 저작물 저자의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인정합니다.

 

그런데 왜 저는 법원에서 표절을 인정받기가 상당히 어렵다고 처음에 말씀드렸을까요? 제 개인적인 생각은 다음과 같습니다.

 

저작권 침해를 인정하기 위한 기준(법리)이 상당히 엄격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법원의 표절 판단 기준이 단순하지 않고 복잡하며 까다롭습니다. 우선 아이디어, 인물의 유형 등이 저작권의 보호 대상이 아니어서 아이디어, 인물의 유형, 주제를 다루는 데 있어 전형적으로 수반되는 사건이나 배경 등을 베낀 작품이 있다고 할 지라도 저작권 침해를 주장할 수 없다는 것부터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작권법은 그동안 아이디어·표현 이분법이라는 기본원칙을 통해, 표현을 베끼지 않았다면 아이디어를 차용하는 것은 괜찮다는 태도를 취하면서 원작자를 보호함과 동시에 새로운 창작자들 역시 보호해 왔습니다. 이는 원작자의 권리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편으로는 문화를 발전시키기 위해 창작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저작권법의 특이한 법리에서 연유합니다. 저작권 침해를 너무 쉽게 인정하고 표절의 기준을 너무 포괄적으로 허용하게 되면 누구도 쉽게 저작물을 창작하려 하지 않을 것이고 이는 문화 발전에 저해한다고 입법자들, 사법 당국이 판단한 결과입니다.

 

관련하여, ‘필수 장면의 원칙(Scenes a Faire doctrine)’이 있습니다. 필수장면의 이론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 등에서 그 주제나 내용을 구성하는데 필요한 아이디어를 표현하기 위해 반드시, 필수적으로, 전형적으로 사용할 수 밖에 없는 표준적인 장면이나 요소는 저작권으로 보호하지 않는다는 이론입니다. 일제 강점기 시대를 표현한 작품에서 등장할 수 밖에 없는 순사를 묘사한 장면이나 독립운동가의 활동 장면, 로맨스 드라마에서의 첫 키스 장면, 서부 영화에서의 결투 장면 등이 필수 장면의 예라고 볼 수 있고, 이러한 장면들이 A 저작물과 B 저작물 모두에서 등장한다고 하여 두 작품 간에 표절이 있었다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이디어가 전형적으로 예정하는 사건이나 등장인물의 성격 타입, 장면의 묘사 등의 요소에 대해서는 그것들이 표현으로서 저작권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하더라도 그 장면이나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되었다거나 불가결하게 된 경우에도 저작권의 보호가 주어진다면 장래 다른 창작자가 해당 표현을 통하여 창작할 기회를 빼앗는 불합리한 상황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저작권의 보호를 제한하는 것입니다(‘아이디어와 표현의 경계에 있는 창작물의 저작권법상 보호에 관한 소고’, 2018. 나강, 아주법학 제12권 제2292면 발췌).

법원이 필수 장면의 원칙을 적용한 판례-서울고등법원 201720*** 판결


원고 소설과 피고 영화에서 주인공 검사가 피의자의 상태를 확인하고 이에 대하여 수사관에게 확인하는 장면, 피의자가 쓰러지거나 호흡곤란을 느끼는 장면, 피의자가 조사실에서 사망하고 구급차가 출동한 후 피의자의 사망이 확인되는 장면, 주인공 검사가 구속되거나 체포되고 언론기관이 이를 촬영 · 보도하는 장면, 검찰 조직의 상급자들이 피의자 사망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는 장면 등이 서로 유사하다고 하더라도, 이는 주인공이 검사이거나 피의자 사망사건을 소재로 한 소설이나 영화 등에서 전형적으로 수반될 수 있는 사건, 배경, 장면에 해당하므로, 모두 아이디어의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서 저작권의 보호대상에서 제외된다고 봄이 타당하다.

 

그러므로, 법원에서는 A 저작물이 B 저작물의 표절물이라고 판단하기까지 상당히 깐깐한 과정을 거치고, 우리가 언뜻 보기에 표절처럼 보여도 이를 인정받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아래 표는 판례 검색 서비스 케이스노트(https://casenote.kr)에서 최근 10년 동안 소설, 극본, 시나리오, 대본들의 표절이 쟁점이 되었던 검색된 판례들의 목록입니다. 판례 검색 서비스에 모든 하급심 판례들이 완벽하게 반영되기는 어렵기 때문에 모든 판례들이 빠짐 없이 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대략적인 경향을 알 수는 있습니다. 28개 사건이 검색되는데, 이 중 최종적으로 법원으로부터 표절이 인정된 사건은 4개로, 표절을 인정받기가 쉽지는 않음을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특히 1심과 2(항소심)의 판단이 다른 경우들도 있었는데 이 경우 3(상고심)인 대법원의 판결에 따르게 됩니다.

    침해 인정 침해 불인정
1 서울중앙지방법원 2019가합588425 판결   0
2 서울중앙지방법원 2019가합541129 판결   0
3 서울중앙지방법원 2016가합502413(본소), 2016가합540361(반소) 판결   0
4 서울중앙지방법원 2015가소452174
서울중앙지방법원 201657771판결
  0
5 부산지방법원 2017가합46307(본소), 2018가합42685(반소) 판결 0  
부산고등법원 201859031(본소), 201859048(반소) 판결   0
대법원 2020221495 판결   0
6 서울중앙지방법원 2012가합86524 판결
서울고등법원 20142028631판결
  0
7 서울중앙지방법원 2017가단5063272 판결   0
8 서울남부지방법원 2012가단32199 판결 0  
서울남부지방법원 20138637 판결 0  
대법원 201437491 판결
서울남부지방법원 201410460판결
  0
9 서울서부지방법원 2018가합34230 판결   0
10 수원지방법원 2019가단553833 판결   0
11 서울중앙지방법원 2018가합550942 판결
서울고등법원 20192021765판결
대법원 2019281125판결
  0
12 서울중앙지방법원 2016가합504921 판결
서울고등법원 20172050905판결
  0
13 인천지방법원 2015가합60043 판결   0
14 서울중앙지방법원 2018가합514601 판결
서울고등법원 20202029444판결
  0
15 서울중앙지방법원 2016가합20898 판결
서울고등법원 20172067323판결
  0
16 서울중앙지방법원 2016가합10952 판결
서울고등법원 20182040806판결
  0
17 서울남부지방법원 2011가단13757 판결   0
서울남부지방법원 20124904 판결 0  
대법원 201314378 판결 0  
18 의정부지방법원 2020가단110090 판결   0
19 서울중앙지방법원 2015가합550569 판결
서울고등법원 20162025353판결
대법원 2017209624판결
  0
20 서울중앙지방법원 2016가합536768 판결   0
21 서울중앙지방법원 2017가합531371 판결
서울고등법원 20192031885판결
  0
22 서울남부지방법원 2010가합1884 판결   0
서울고등법원 201217150 판결 0  
대법원 20138984 판결   0
서울고등법원 201441430 판결   0
대법원 20158933 판결   0
23 서울중앙지방법원 2017가단5234777 판결
서울중앙지방법원 201935024판결
  0
24 서울중앙지방법원 2019가단5018160 판결   0
25 서울북부지방법원 2021가합25193 판결 0  
26 서울중앙지방법원 2013가합86262 판결 0  
27 서울중앙지방법원 2015가단5391492 판결
서울중앙지방법원 201776939판결
0  
28 서울중앙지방법원 2016가합518661 판결
서울고등법원 20162041836판결
  0

 

판례들의 문제점

 

지적재산권 및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대놓고베끼는 경우는 없습니다. 문제는 위와 같이 표절 인정에 상당히 인색한 법원의 태도, 복잡하고 엄격한 표절 인정 법리 등을 누군가가 교묘하게 이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표절을 의심받는 작가가 표절 대상에 접근하기가 상당히 용이했던 경우가 인정되는 것뿐만 아니라(의거 관계) 두 작품 간의 구체적인 줄거리가 비슷함에도, 표절한 것으로 의심받는 작품에 더 여러 캐릭터가 등장하거나 더 복잡한 사건이 많다는 이유로 표절을 인정하지 않는 법원의 태도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원소스멀티유즈(one source multi use), 즉 소설이 문학의 한 형태가 아니라 '이야기'라는 컨텐츠로서, 이러한 하나의 컨텐츠를 가지고 영화, 드라마, 게임, 음반, 애니메이션, 캐릭터상품, 장난감, 출판 등 다양한 방식으로 판매해 부가가치를 올리는 현재 문화 산업의 발전 형태를 보면, 과연 어디까지가 저작권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아이디어의 영역이고 어디까지가 저작권의 보호를 받는 표현의 영역인지, 과연 무엇이 저작권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전형적으로 수반되는 사건이나 배경이고 무엇이 저작권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비전형적인 특이한 사건이나 배경이라는 것인지 그 경계선이 희미할 수 있습니다. 현재 법원의 태도나 법리는 그 경계선이 희미하면 표절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데, 이는 문화 산업의 발전이라는 미명 하에 기존 문화 권력이나 기득권의 이익으로 돌아갈 수 있고 신인 작가들의 진입을 오히려 방해할 수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표현뿐만 아니라 표현에 준할 수 있는 아이디어또는 표현과 아이디어의 경계에 있는 영역까지 저작권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법리가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현재 법 영역 내에서 내 작품이 표절 당하는 것을 방지하거나 표절사고 발생 시 효과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미리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공화 구성원 변호사 김지환

전화: 02-537-3784

이메일: fron200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