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국은행의 과감한 제안과 헌법재판소 2004헌마554·566 결정

김지환 변호사 2024. 10. 6. 00:05

   저는 18년 전에 영국에서 개발학이라는 다소 생소한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마쳤습니다. 개발학은 개발도상국이 어떻게 하면 경제·사회 개발을 해서 그 국민들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지에 관해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개발학의 영역 안에서는 경제학 논의가 주요하지만 사회, 정치, 문화에 대해서도 함께 논의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와 대만은 개발을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로 수업 시간에 종종 등장하곤 했습니다. 외국 논문들에서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과 떼어놓을 수 없는 개념으로 독재, 재벌, 유교 문화, 교육열 등이 언급되어 신기했었고, 당시 우리나라는 선진국까지는 아니지만 개발도상국에서 훌륭히 중진국으로 진입한 사례로 소개되었습니다. 그리고 20217월에 유엔무역개발회의에서 우리나라는 그룹A(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그룹B(선진국)로 지위가 변경되어 이제는 심심치 않게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분류합니다. 하지만 1인당 GNI4만달러는 되어야 선진국으로 인정하는 기준으로 보면 20231인당 GNI36천달러인 우리나라는 아직 그에 못 미칩니다.

   여러 곳에서 우리나라의 저성장과 발전의 정체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법원의 판결은 국민들의 삶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지만 앞서 언급한 우리나라의 발전 가능성에 직접적으로 좋지 않은 영향을 준 대표적인 판결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헌법재판소 2004. 10. 21. 선고 2004헌마554·566(병합) 전원재판부 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 위헌확인 결정입니다. 이 결정은 2003년 노무현 정부 당시 추진했던 행정수도 이전 및 건설이 위헌이라는 것으로, 이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인해 행정수도 이전은 와해되었습니다. 14년 전 법학전문대학원 재학 중 헌법 수업 시간에 대표적인 헌법 판례 중에 하나로 위 판례를 배울 때에 들었던 의문은 아직도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위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서울이 수도인 것은 관습헌법이라는 해괴한 법리를 통해 결론을 도출했다는 문제와 함께, 수도를 바꿀 수 있는 국민투표도 사실상 막아놓았기 때문에 오직 서울만이 우리나라의 수도이고 이를 건드릴 수 없다는 서울공화국의 공고한 논리를 헌법재판소가 알아서 제공 해주었습니다.

   위 헌법재판소 결정은 이제까지도 그래 왔지만 앞으로도 지방 균형 발전의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의 수도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는 조문을 추가하는 개헌을 하거나 헌법재판소가 위와 같은 결정을 변경해야 하는데 이들 모두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서울과 그 인근에 우리나라 대부분의 기업들과 일거리가 몰려 있으므로 사람들은 서울로, 수도권으로 몰릴 수 밖에 없습니다. 서울과 수도권의 집값은 떨어지지 않고 올라갈 수 밖에 없고 대부분의 시민들은 팍팍한 삶에 몰리게 됩니다. 비정상적으로 치솟은 서울과 수도권의 부동산 가격때문에 집한채라도 사려면 '영끌'을 할 수 밖에 없고 이자내기도 버거워 자연스럽게 소비는 침체되며 내수가 위축되는 상황이 장기화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현재 심각한 문제인 인구수의 감소와도 상당히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성장과 국가경쟁력 쇠퇴는 당연한 귀결로 보입니다.

   그런 면에서 얼마 전 한국은행의 입시경쟁 과열로 인한 사회문제와 대응방안은 훌륭한 제안이었습니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고, 누구나 말할 수 있는 사안이지만, 우리나라 통화정책과 경제정책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한국은행에서 제안을 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습니다. 입시경쟁 과열은 사교육 부담 및 교육기회 불평등 심화, 사회역동성 저하, 저출산 및 수도권 인구집중, 학생의 정서불안과 낮은 교육성과등 우리나라의 구조적 사회문제를 유발하고 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단초로서 지역별 비례선발제를 과감히 제안한 것입니다. 한국은행의 설명에 따르자면 상위권대들이 대부분의 입학 정원을 지역별 학령인구 비율을 반영하여 선발하되, 선발기준과 전형방법 등은 자유롭게 선택하는 제도입니다. 딱히 물꼬를 틀지 못하고 있는 수도권 집중 문제 해결의 한 방법으로 한국은행이 교육이라는 이슈를 파고들어 타개책을 제시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논의가 논의만으로 끝나지 않고 서둘러 시행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법무법인 공화 구성원 변호사 김지환

전화: 02-537-3784

이메일: fron2001@naver.com